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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 12월 22일 울릉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들어온 현재룡(비오), 이윤옥(요한 보스코), 강상윤(요한)이 울릉도 중앙천주교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현판식을 가졌다. 사진제공=도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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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105년 전 신앙 공동체 형성
"저의 오래된 신자 두 세대가 수년 전에 울릉도에 가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그들이 저를 찾아와 세례준비가 다 된 20가정의 명단을 보여주면서 신부님의 방문을 청했습니다. (중략) 그들은 이곳에서 교리서와 성물을 구입해 갔으며, 떠나면서 그곳을 방문하시어 영세준비가 다 된 사람들에게 영세식을 거행해 주십사하는 청을 다시 한번 되새겨주었습니다. 영세준비가 다 된 사람들 외에도 예비자들이 상당히 있는 것 같습니다.…(생략)"
대구 영남지역 복음화에 초석을 다진 파리외방전교회 로베르(한국명 김보록, 1853~1922) 신부가 1905년 뮈텔(제8대 조선대목구장) 주교에게 보낸 서한 내용이다.
1905년경 이미 울릉도에는 신앙 공동체가 형성돼 있었다. 뮈텔 주교는 울릉도 신자들이 세례식 집전을 청하기 위해 육지로 나와 부산과 대구를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명의 사제를 보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배를 탄 신부는 이들이 선교사가 섬에 발을 들여놓기를 희망한다는 등의 자세한 내용의 서한을 주교에게 보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초기 신앙의 싹은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며 빛을 잃어갔다.
그리고 55년 후, 울릉도에 첫 본당이 세워진다. 동해 끝자락인 독도와 울릉도를 관할하는 도동본당(주임 한창현 신부)이다. 신비의 섬에 신앙을 뿌리내린 도동본당이 본당 설립 50돌(3월 17일)을 맞아 21일 오전 10시 30분 조환길(대구대교구장 직무대행) 주교 주례로 축하미사를 봉헌하고 축하식을 갖는다. 70명의 견진성사도 함께 거행된다.
울릉도에 신앙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건 1955년이다. 당시 포항본당 현재룡(비오) 전교회장은 드망즈(안세화) 주교 권유로 강상윤(요한)ㆍ이윤옥(요한 보스코)과 함께 섬에 들어왔다. 이들은 울릉도 중앙천주교회 준비위원회를 구성, 누에고치 창고를 빌려 400여 명의 신자들과 첫 공소예절을 봉헌하는 등 복음의 꽃을 피워나갔다.
그러나 당시 울릉도 신자들은 기근과 장마, 산사태로 인해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다. 울릉도의 사도 바오로 현재룡 회장은 서울에 있는 안세화 주교에게 찾아가 울릉도의 상황을 보고하고 원조를 요청했다.
현 회장은 안 주교의 도움으로 국제가톨릭복지협의회 구호물자를 들여와 울릉도민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때 많은 주민들이 입교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1960년 도동본당이 설립되고 이길준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발령받아 본당으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261개 가구 655명의 공동체로 성장한 본당은 기도와 희생으로 신앙의 텃밭을 일구며 지역 복음화에 힘써왔다. 지난해 2월에는 독도 지키는 성모상을 봉헌하고 해마다 8월 15일(광복절ㆍ성모승천대축일)을 `독도 지키는 성모님의 날`로 정해 독도 수호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도동본당은 반세기 신앙을 경축하며 본당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신앙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묵주기도 100만 단을 봉헌했다. 또 50주년의 발자취를 엮어 「울릉도와 함께 독도와 함께 도동성당 50년사」도 펴냈다.
한창현 주임 신부는 "이미 100여 년 전 울릉도에 들어와 신앙생활을 한 신자들과 신부님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며 "새로운 50주년을 향해 지역 복음화를 향해 본당 구성원들이 일치와 봉사의 기쁨을 사는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교구장 직무대행 조환길 주교는 「도동성당 50년사」 격려사에서 "울릉도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그것이 자라 많은 열매를 맺기까지 애쓰고 수고한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