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는 자유의 상징이다. 정해진 틀과 형식 없이 자유를 발산할 수 있는 장소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재능을 뽐내고, 소신을 밝힌다. 또 낯모르는 이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을 수도 있다.
이런 길거리와 피정이 만났다. 어색하지만 호기심을 부르는 만남이다. 길거리와 피정의 조합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는지 기자가 직접 2일 서울 창경궁에서 열린 ‘함께하는 길거리 피정’에 참여했다.
# 길에서 만나는 하느님길거리 피정은 말 그대로 길 위에서 하는 피정이다. 도심이든 시골이든, 바다든 산이든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말씀과 하느님께로 향하는 마음만 있다면 가능하다.
이번 ‘함께하는 길거리 피정’은 지난 5월 이후 두 번째 만남이다. 약속시각인 오후 3시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20여 명이 함께했다. 트위터를 통해 아이디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처음 만나기 때문에 약간의 서먹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참가자들은 낯선 피정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모습이다. 길거리 피정을 주관하는 조인영 신부(예수회)의 설명으로 피정이 시작됐다.
“길거리 피정에서는 혼자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눠드린 유인물에 있는 말씀과 걷기를 읽어보시고 2시간 동안 말씀 안에 머무르세요.”
유인물에는 성경 문구가 적혀 있다. 이번 피정의 말씀은 창세기 3장 7-9절이다.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숨어 있는 아담과 하와를 찾는 하느님의 간절한 부르심이 담긴 구절이다. 익숙한 말씀이지만 자연과 더불어 묵상하게 되니 새롭게 느껴졌다.
# 자연 속에서 하느님과 대화하기입장권을 끊고 창경궁으로 들어갔다. 문 하나를 경계로 현재에서 과거로 옮겨갔다. 끈적이는 날씨였지만 궁 안의 우거진 나무들은 시원함을 선물해줬다. 천천히 걸으면서 성경 구절을 되새겼다. 묵상에 도움이 되는 ‘걷기’도 한 글자 한 글자 새겨 읽었다. 지저귀는 새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 바람 소리는 산만한 정신을 오로지 말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오랜만에 걷는 흙길 위에서 하느님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여전히 눈은 행인들에게 향했고, 귀는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결국 창경궁 내 춘당지 근처에 있는 돌 위에 홀로 앉아 묵상을 시작했다. 자연이 눈에 들어왔고 주변이 고요해지는 듯했다. 그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답을 주시는 것 같이 느껴졌다. 묵상의 느낌을 사진으로 담아내기도 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올려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다. 피정 시간 내내 창경궁을 걸어 다녔다. 중간에 피정 참가자들을 만났지만 자기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렇게 도심 속에서의 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 길거리 피정은 계속된다. 쭈~욱!오후 5시, 창경궁 입구에 다시 참가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피정이 끝난 뒤의 모임은 의무가 아니지만 참가자 대부분이 돌아온다. 조인영 신부는 참가자들에게 이제부터 진정한 피정의 시작이라고 설명한다.
“집에 돌아가셔서 오늘의 묵상과 찍은 사진들을 돌아보고 그 느낌을 트위터, 페이스북, 미니홈피를 통해 이웃과 나눠주세요. 지금 피정이 끝난 것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창경궁에서의 묵상을 생각했다. 사진에는 그 시간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트위터에는 이미 참가자들의 나눔이 올라와 있었다. 같은 말씀, 장소 안에서도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음을 배운다. 또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심을 깨닫고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심을 느낀다. 이렇게 기자의 첫 길거리 피정이 끝났다. 하지만 정말 끝은 아니다. 생활 속에서 피정은 계속된다.
▲ 조인영 신부(예수회)가 참가자들에게 ‘함께하는 길거리 피정’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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