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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살아가려면 고치라고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배려해야
며칠씩 집을 떠나 피정을 가거나 지방에 다녀야 할 일이 자주 있습니다. 매번 아내가 가방을 준비해주는데, 머물 곳에 가서 가방을 열 때마다 불편을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비누통 뚜껑을 닫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매번 새 비누를 비누통에 넣어주는데, 작은 비누통에 새 비누를 담아주니 뚜껑을 닫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용하던 비누를 넣어주든가, 반으로 잘라서 넣어주든가, 더 큰 비누통에 담아주든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매번 불편하게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비누를 넣고 뚜껑을 닫아보면 잘 닫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 텐데 `왜 비누를 걸친 채로 넣어주는 걸까?`하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쓸 건데, 많이 써서 작아진 비누를 넣어줘도 남겨올 텐데 굳이 새 비누를 넣어주는 이유를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소소한 일이지만 생각은 점점 깊어졌습니다. 워낙 고집불통인 사람이니 고치지 못하고 살아왔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왜 개선하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매번 하던 대로만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비누통 문제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닐 때 아프면 결석도 할 수 있으련만 "조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석은 할 수 없다"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는 아내를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은 요즘 같은 세상에 융통성이 있어야지, 항상 정해진 대로만 한다면 어디 숨이 막혀서 살 수 있겠냐고 항변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다른 의견으로 충돌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설득해야 하는 것이 번거로워 참아버렸습니다. 결국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하거나 아니면 내가 너무 큰 소리를 내어 아내가 양보를 해버리는 쪽으로 결론이 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생기면 이제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하는지 알고 있기에 참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조건 참으려고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이해하고 노력하려는 훈련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아내가 며칠간 집을 비웠다가 돌아왔습니다. 아내가 들고 돌아온 짐을 정돈하는데, 비누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 비누통 뚜껑을 덮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날은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누통 뚜껑을 덮지 못할 때마다 단단히 일러줘서 되풀이되는 불편이 개선되도록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그때마다 잊어버리고 지내온 나 자신의 한계도 더불어 떠올랐습니다. 생각하는 방법이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살아가려면 서로에게 고치라고 요구하기 전에 먼저 불편함을 덜어주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새 비누를 욕실에 갖다 두고 욕실에서 사용하던 작아진 비누를 비누통 속에 담아뒀습니다. 다음에는 작은 비누가 담겨진 비누통 그대로 가져가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고치라고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도와준 것입니다. 다음에는 피정을 가기 위해 짐을 꾸릴 때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 미리 준비해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