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역촌동본당(주임 정병조 신부)에는 `은행`이 하나 있다. ○○은행 역촌동성당 지점이 아니다. 무형(無形)의 이 은행은 돈을 입출금하는 은행이 아니라 신자들의 재능을 기부받아 나누는, 일명 `재능나눔은행`이다.
재능나눔은행은 신자들의 재능을 `예치`해 뒀다가 지역사회 어려운 이웃을 위해 언제든 `인출`한다. 성당에 비치된 재능기부 신청서에 인적사항과 특기를 적어내면 재능이 예치된다. 기부된 재능은 상담과 시설봉사, 재가복지 등 분야별로 나눠 쓰인다. 현재 은행에 재능을 예치한 신자는 350여 명. 은행은 지난해 본당이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와 본당사회사목 시범본당 협약을 체결하는 것과 동시에 발족해 지역사회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청소와 목욕봉사부터 이ㆍ미용, 청소년 학습지도, 미술치료, 종이접기 등 재능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도배, 전기설비, 상담 등 직업을 재능으로 기부한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팀별로 나눠 가정과 시설을 방문한다. 얼마 전 전기팀 신자들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가정에 인터폰과 방범등을 설치해줬다. 지난달 두 가정에 도배를 해준 도배팀 신자들은 "곰팡이가 덕지덕지 붙은 반지하 방에 사는 어르신을 위해 도배를 해드릴 때 우리 자신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재능나눔은행 진행위원 임춘성(프란치스코)씨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가정이 의외로 많아 전문 분야 재능을 더 많이 기부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재능 기부자들은 본당 각 단체와 함께 지역사회 시설과 병원 등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기도 한다. 초ㆍ중ㆍ고생 25명으로 구성된 본당 펠릭스 실내악단은 2009년부터 인근 서울시립서북병원 환우들을 위해 음악봉사를 해왔다. 이들은 병원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어 환우들이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도록 돕는다.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리코더 실력을 재능으로 기부해 어르신들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악단을 이끌고 있는 안미성(마르가리타)씨는 "어린이들도 이웃과 더불어 지내야 함을 깨닫고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해왔기에 봉사를 꾸준히 지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술치료, 목욕봉사, 종이접기 등 재능을 기부한 봉사자들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과 함께 매달 행려인과 장애인들이 거주하는 은평의 마을과 은혜로운 집, 평화로운 집 등에서 꾸준히 봉사해오고 있다. 본당 축구동호회와 색소폰동호회도 함께 뛰고 노래 부르며 행려인들 외로움을 달래준다.
이러한 봉사는 국경을 넘어 국외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본당은 문화 복음화 일환으로 4년 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는 역촌문화제 수익금으로 지난 1월 본당 청년들을 네팔 빈민지역에 파견했다. 청년들은 현지 사목자들과 힘을 합쳐 지역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음악, 미술, 의료봉사를 펼치고 돌아왔다. 이들은 일주일간 지역 아이들과 생활하며 봉사와 선교를 동시에 실천했다.
설 연휴도 반납하고 봉사에 참가했던 한소희(마리아, 22)씨는 "열악한 환경에 사는 아이들을 보면서 제게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겼다"며 "봉사는 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들에게서 기쁨과 사랑을 얻은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정병조 주임신부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지역사회와 함께함으로써 본당의 이웃 섬김이 꾸준히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본당은 앞으로 지역 아동과 청소년 교육을 돕는 멘토ㆍ멘티 제도를 활성화하는 등 젊은이들 봉사활동을 고취시킬 예정이다. 또 지구 차원의 봉사자 교육과 본당 간 교류를 통해 유기적 봉사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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