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황이 엘코브레성당을 순례, 사랑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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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종합】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3월 26~28일 사회주의 국가 쿠바를 사목방문, 자유와 평화 정의의 가치를 역설하며 쿠바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를 전했다. 교황은 이에 앞서 23~26일 멕시코 사목방문을 마쳤다.
교황의 이번 사목방문은 쿠바의 수호성인 `엘 코브레의 사랑의 성모` 성모상 발견 400주년을 기념해 이뤄졌다. 이 성모상은 1612년 엘 코브레 지역 어부들이 바다에서 건진 것으로 발견 당시 `사랑의 성모`라고 새겨져 있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거센 풍랑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진 어부들이 하느님께 살려달라고 기도를 바치자 잠시 뒤 파도가 멈췄고, 잔잔해진 수면 위에 이 성모상이 떠 있었다. 쿠바인들의 어머니로 사랑받는 사랑의 성모는 1916년 교황 베네딕토 15세에 의해 쿠바 수호성인으로 선포됐다.
교황은 3월 27일 사랑의 성모상이 안치된 엘 코브레성당을 순례하면서 고통받는 이들, 자유를 빼앗긴 이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교황은 "우리의 삶에서 살아 숨쉬는 하느님 사랑을 증거하고, 쿠바인들에게 믿음과 희망을 전하는 자비의 순례자로서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낙태를 합법화한 쿠바에 각성을 촉구하며 "인간 생명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엄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쿠바는 가장 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생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연대와 믿음의 증거자를 필요로 한다"며 생명의 존엄성을 거듭 강조했다.
교황은 쿠바에 머무는 동안 쿠바의 신앙 쇄신과 함께 자유, 평화, 정의를 기치로 한 개혁과 개방을 강조했다.
교황은 쿠바 도착 첫날 봉헌한 대규모 야외미사 강론에서 "믿음을 굳건히 하고 평화와 용서, 이해로 무장해 새롭고 열린 사회, 하느님 선하심을 더욱 잘 드러내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사목방문 마지막 날 수도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집전한 미사에서도 "쿠바에는 변화가 필요하며 이 변화는 진리와 사랑, 자유를 통한 화해의 길로 나갈 때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교황은 특히 자유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그 누구도 기본적 자유를 침해당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쿠바를 떠나기 전 공항에서는 쿠바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를 비판하면서 "경제 봉쇄는 쿠바인들에게 부당한 짐이 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 쿠바 신자들이 산티아고 데 쿠바의 한 광장에서 환호하며 교황 미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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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은 "교황은 쿠바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물했고 잠들었던 신앙을 일깨웠다"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진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며 신앙인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줬다"고 말했다.
한편 교황은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을 비롯해 지난 50년 간 쿠바를 통치했던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과 회담을 가져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교황은 라울 카스트로 의장에게 진정한 종교 자유를 허용할 것을 촉구하면서 "가톨릭교회가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가톨릭 정신을 가르치는 일에 두려움 없이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교회 최대 축제인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수난의 정점인 성 금요일도 공휴일로 기념하기를 희망했다.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은 1998년 쿠바를 방문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회담을 가진 바 있다. 동유럽권 민주화에 씨앗을 뿌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당시 독재자 카스트로를 향해 낙태 금지, 종교 자유 등을 촉구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방문을 계기로 쿠바는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고, 종교 행사에 대한 제재를 완화했다.
쿠바는 국민 1100만 여명 가운데 60가 가톨릭 신자다. 교구는 11개, 본당은 304개며, 주교 17명, 사제 361명, 수도자 656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