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한 23세 교황이 바티칸에서 개인 비서 카포빌라 몬시뇰(오른쪽) 보좌를 받으며 한 외교사절을 접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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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일몬테조반니, 이탈리아=CNS】 70대 초반의 안젤로 론칼리 대주교가 1953년 추기경에 서임되면서 베네치아 총대주교로 임명됐을 때, 대주교는 37살 된 로리스 카포빌라 신부를 비서로 선택했다. 이를 마뜩찮게 여긴 한 측근이 론칼리 추기경에게 새 비서 신부가 비서 일을 하기에는 너무 병약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중에 교황 요한 23세가 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론칼리 추기경은 이렇게 대꾸했다.
"그렇다면 그 신부는 내 비서로서 죽음을 맞이하면 될 것이네."
그렇게 병약하다는 평을 받았던 비서 신부는 자신이 모시던 요한 23세 교황보다 반 세기 이상을 더 살아 이제는 96살 고령이 됐다. 그가 카포빌라 대주교다. 밀라노에서 북서쪽으로 40여km 떨어진 요한 23세 고향에서 복자 요한 23세를 기념하는 작은 박물관을 돌보며 노년을 지내고 있는 카포빌라 대주교가 요한 23세와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놨다.
요한 23세가 1958년 교황에 선출되고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많은 추기경들과 주교들이 새 교황에게 교회가 당면한 과제들을 길게 늘어놨다. 카포빌라 대주교에 따르면, 그것들은 교리적인 것이 아니라 사목적인 문제들이었다. 전례, 외교, 사제 교육과 규울 등에 관한 것들이었다. 요한 23세 교황은 비서인 카포빌라 신부에게 "내 책상에는 문제들, 질의들, 요청들, 희망들이 쌓이고 있는데, 정말로 필요한 것은 공의회야"하고 말했다. 요한 23세 교황의 이 말이 앞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어떤 공의회가 될 것인지를 시사해 주었다고 카포빌라 대주교는 회고했다.
교황은 또 카포빌라 신부에게 공의회를 소집하겠다는 구상을 여러 번 언급했지만 그는 일절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교황은 비서 신부의 침묵에 대한 해석을 내놓았다.
"자네는 내가 늙었다고 생각하고 있네. 내가 이 많은 과제들을 엉망으로 만들 것이라고, 내게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네. 하지만 그건 신앙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네. 준비위원회로써 시작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 해도 큰 일이 될 것이네. 그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이 오겠지. 시작하는 것만도 대단히 영예로운 일이라네."
1962년 10월 11일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막한 날 밤에, 카포빌라 신부는 피곤에 지쳐 못내켜 하는 교황을 설득해 베드로 광장에서 기다리는 군중들에게 축복 인사를 하도록 했다. 이때 교황이 한 말은 이제는 유명한 말로 기억되고 있다.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 여러분 자녀들에게 키스를 하십시오. 그리고 교황이 보내는 키스라고 전해 주시기를."
요한 23세 교황은 또 「칠층산」의 저자로 유명한 트라피스트회 수사 토마스 머튼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머튼 수사는 교황에게 공의회에 교회 일치 분야를 꼭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을 손님으로 초대했다.
바티칸 직원들의 급료가 인상되면서 수위가 받는 급료가 자신이 받는 급료만큼이나 됐다고 한 추기경이 불평을 터뜨렸다. 그때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고 카포빌라 대주교는 회고했다. "그 수위는 자녀가 10명이나 된다네. 그런데 그 추기경은 그렇지 않기를 나는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