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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아이들의 어머니' 옥잉애 여사 선종

대구 경북지역에 탁아시설 등 세우고 50여 년간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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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경북지역에 탁아시설 등 세우고 50여 년간 헌신



대구ㆍ경북 지역의 첫 탁아시설인 가톨릭 소화보육원을 세우고 50여 년간 형편이 어려운 3500여 명의 아이를 돌본 옥잉애(엘레른캄프 잉게보그, Ellernkamp Ingeborg, 사진) 여사가 6월 25일 대구 자택에서 선종했다. 향년 84세.


1932년 독일 리드리엔에서 태어난 옥 여사는 프라이부르크대학 보육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유치원 교사로 일하다 1963년 대구에 있는 오스트리아인 친구를 통해 가난한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고 서정길 대주교의 요청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옥 여사는 1965년 독일 가톨릭 국제개발원조기구의 지원을 받아 대구 대명동에 가톨릭 소화보육원을 설립했다. 6ㆍ25전쟁 후 가정을 잃어버린 가난한 어린이들을 품에 안았다. 독일 신문에 한국 어린이들을 위한 후원을 호소하는 글을 보내는 가하면, 미국 카리타스에서 보내온 옥수수와 밀가루 등으로 아이들의 허기를 채워줬다.


옥 여사는 한국가톨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을 지내며 독일의 상황중심 유아교육을 한국에 소개하는 등 한국의 유아교육 및 아동복지를 위해 헌신했다. 옥 여사가 설립한 가톨릭 소화보육원(현 가톨릭 소화어린이집)은 설립 목적을 이어받아 저소득층 자녀와 맞벌이 부부 자녀를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고인의 장례 미사는 6월 27일 대구 복자성당에서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와 이문희 대주교의 공동집전으로 봉헌됐다. 유해는 군위 가톨릭 묘원에 안장됐다. 조 대주교는 강론에서 “(고인은) 아동복지사업의 선구자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늘 겸손한 삶을 사셨다”며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섬김과 봉사, 헌신의 삶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고 가셨다”고 추모했다.
 

옥 여사의 이름 ‘잉애’는 남을 잉(剩)과 사랑할 애(愛)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지은 이름이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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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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