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대흥동주교좌성당에서 장례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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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장례미사는 4일 오전 10시 교구 대흥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봉헌돼며, 유해는 대전가톨릭대 성직자묘역인 하늘묘원에 안장된다.
1935년 충남 논산의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난 박 신부는 1954년 성신대학(현 가톨릭대
신학대)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1961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리옹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63년 12월 리옹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이어 독일 본대학과 프라이부르크대학,
이탈리아 로마 성서대학에서 공부했다.
10년간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박 신부는 가톨릭대 신학부에서 16년을 교수로
살았다. 성서신학을 전공했지만, 신약학뿐 아니라 그리스도론도 강의했다.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신학을 한국교회에 전하는 역할을 했으며, 해방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번역서인 「예수 그리스도」「예수와 역사」「나자렛 예수」 등과 저서인 「성서와
그 주변 이야기」등을 통해 신학 연구와 발전에 이바지했다.
1974년 설립된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신학적 비전을 제공했으며, 이로 인해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배후자로 지목돼 당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조사 후유증으로 1년간
요양했지만, 평생을 하느님 정의와 백성들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신했다. 본당 사목도
논산 부창동본당과 신평ㆍ도고 본당 등 3개 본당에서 10여 년밖에 하지 못했다. 1997년부터
8년간 긴 요양 끝에 2005년 1월에 은퇴했고, 은퇴 이후에도 지병인 심장병으로 줄곧
심장박동제어기를 달고 살았다.
제자인 황종렬(레오) 박사는 “올해 늦은 봄에 찾아뵈었을 때도 눈빛이나 말씀이
살아 있으셨는데 이렇게 하느님 품으로 가시니 황망하기 이를 데 없다”며 “평생을
성경과 예수님 안에서 충실하게 머무르셨고, 진리에 대한 믿음을 꺾지 않으셨으며,
주위 사제들, 평신도들과 함께 다 같이 시대를 읽으려고 노력하셨던 분이셨다”고
추모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