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유산
마인라트 림베크 / 분도출판사 / 1만 3000원
지극히 인간적 눈으로 보자면, 예수의 죽음은 신성 모독과 율법을 어긴 한 유다인의 생 마감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을 뿐 아니라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 칭했으며 제자들을 모아 가르침을 전하다 십자가형으로 죽은, 당시 사람들에겐 죄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본 적이 있는가. 단순히 예수의 죽음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진 않은가.
독일 튀빙겐대에서 성서언어학을 가르친 저자 마인라트 림베크는 새로 출간한 「예수의 유산」에 예수의 행적을 인간적인 시각과 심경을 통해 분석해 담아냈다. 그의 물음은 ‘예수는 왜 인간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 했는가?’, ‘하느님 뜻에 따라 그토록 인간 구원을 외치던 예수의 죽음이 유의미한 것이었는가?’하는 뿌리에서 시작한다. 림베크는 율법학자와 사제들의 핍박과 사람들의 비난을 감내하다 끝내 골고타 수난 뒤에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예수의 심경과 행동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면밀히 파헤쳤다.
2000년 전 당시 사람들은 하느님을 머지않아 심판을 통해 종말을 불러올 분으로 여겼다. 그러나 림베크에 따르면 예수에게는 고유한 하느님 상(像)이 있었다. ‘심판자 하느님’이 아닌 백성들의 ‘친구’이자 ‘진정한 구원자’로 여긴 ‘예수의 시각’이 있었다. 림베크는 이를 이해해야 예수의 돌발행동이라고 여겨진 행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밝힌다.
예수는 왜 하느님이 쉬라고 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을까. 왜 성전 앞 환전상의 탁자를 뒤집어엎었을까. 이 같은 돌발행동은 당시 사람들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예수가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버렸다”(마르 11,17)고 호통을 친 것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사제들의 모습을 꼬집은 것을 넘어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렙톤 두 닢을 넣는 것(마르 12,41-44)처럼 성전을 진정한 봉헌이 실현되는 장소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모세의 율법은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자”(신명 21,23)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는 저주받은 자인가?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하고자 했다면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해야 했던 것 아닌가. 바오로 사도는 십자가 사건을 ‘신적 지혜의 작용’으로 봤다. 하느님 구원과 평화는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사건이었다.
림베크는 하느님이 예수를 보낸 것은 그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참된 뜻이 무엇인지, 하느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면 계명들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가르쳐주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149쪽) 우리는 죽음의 순간에도 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예수의 확고한 믿음, 그리고 구원의 손길을 붙잡으려는 각오를 굳건히 지니면 된다고 덧붙이면서.
책은 1부 십자가를 향한 예수의 여정부터 부활의 의미, 십자가 죽음에 대한 해석, 나아가 그리스도교 의미까지 근본적인 신앙의 참뜻을 깊이 되새겨준다. 번역은 김형수(부산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신부가 했다. 부제는 ‘그리스도교 정신을 새롭게 생각하다’이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