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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 신앙 더욱 탄탄해졌다”

포화 뚫고 국경 넘은 시리아 난민 모나 란다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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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란다씨가 인터뷰 중 울음을 터뜨리자 교구 봉사자가 위로하고 있다.


가족 8명과 함께 피란 온 그리스도인 난민 모나 란다(54)씨 손에 약봉지가 들려 있다. 자흘레대교구와 ACN에서 보태 준 돈으로 사온 남편의 심장약이다. 피란길에서부터 심장 이상 증세를 보인 남편은 병원에서 “죽기 일보 직전에 왔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도 약을 달고 산다.

란다씨는 “IS 대원들은 아들을 구타하면서 IS에 가입하라고 협박하고, 마을 소녀들을 끌고 갔다”며 “우리 가족은 그들 손에 죽고 싶지 않아서 포격을 뚫고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피란길은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 여정과 다를 게 없었다”며 5년 전의 피란길 악몽을 떠올렸다.

란다씨 가족의 생활은 ‘버티는 것’이지 사는 게 아니다. 빈민가에 작은 방을 하나 얻었지만, 수입은 아들 혼자 나가 벌어오는 돈이 전부다. 자흘레 시내에서 일하는 시리아 난민 남성의 하루 품삯은 20~30불(약 3만 원)이다. 그나마도 난민들 탓에 일거리가 줄었다고 반발하는 원주민들 때문에 일감도 많지 않다.

ACN의 도움으로 월세 충당
란다씨 가족은 ACN이 교구를 통해 지원해 주는 돈으로 월세를 낸다. 제대로 된 식사는 무료 급식소 ‘자비로운 요한의 집’에 가서 먹는 점심이 유일하다. 그는 “하느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쟁 전에는 가난해도 행복했는데…
그는 시리아 고향 얘기를 하다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 레도씨는 내전 발발 전에 채석장에서 일했다. 가난했지만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놔둔 채 도망쳐야 했다.

그리스도인이라서 박해받은 데 대해 그는 “그리스도인이라서 전쟁 중에 우리의 신앙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리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며 “한국에서 온 손님과 다시 만날 때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성금 계좌 : 우리은행 1005-303-232450
(예금주 : 사단법인 에이드투더처치인니드 )


고통받는 교회 돕기(Aid to the Church in Need)는 차별과 박해, 가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톨릭 교회를 지원하는 교황청 산하 단체로, 한국 교회도 1960, 70년대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2015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 지부(이사장 염수정 추기경)가 개설됐다.

홈페이지: http://www.churchinnee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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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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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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