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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티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김규영 교수. 출처=「시간을 넘어서 영원으로」 |
「시간과 영원」, 「시간론」, 「실존에 관한 명상」, 「철학과 신」, 「영원의 의미」….
수많은 저서가 대변하듯 태암 김규영(토마스 아퀴나스, 1919~2016) 교수는 평생 시간의 철학과 영원성을 연구한 ‘서양 중세철학의 선구자’이자 ‘국내 철학자들의 철학자’였다.
“씨앗은 죽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 없는 것. 그러기에 죽음이란 생명이 영원으로 이어져가는 사이에 있는 한낱 관문에 지나지 않는다.”(김규영 교수)
시간의 벽을 넘어 영원성의 의미에 천착해온 그는 지금까지 많은 이의 가슴에 ‘영원히’ 존재하는 스승이다.
평생 시간을 뛰어넘어 죽음을 초월해 영원과 벗하면서 탐독한 진리를 가르쳤던 김 교수의 추모문집 「시간을 넘어서 영원으로 - 태암 선생님을 기리며」가 발간됐다. 김 교수는 97세를 일기로 선종하기까지 70년 넘는 세월을 교수요 철학자로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후학을 ‘훌륭한 인재’로 양성하는 데 전념했다. 선종 2주기를 맞아 발간된 추모문집은 오랜 세월 가르침을 받은 각계 인사들이 그를 기리며 쓴 글들을 담고 있다.
“(교수님은) 우리가 살면서 깊이 생각해야 할 사항, 자기의 장래를 설계하면서 생각해야 할 사항, 학교생활에 필요한 수칙을 줄줄이 좋은 명언으로 쓰셨다. 선생님께 개인 지도를 받기 전에 반드시 책 한 권을 읽고 그 내용 이야기로 대화의 물꼬를 터야 했다.”(권숙일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선생님은 고등학생인 우리를 성인으로, 사모님은 지아비의 벗으로 대해주셨다.”(최두환 전 중앙대 독문학 교수)
이토록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는 김 교수는 제자들을 대할 때에도 철저히 자신은 낮춘 채 그들의 눈높이에서 토론했다. 그러면서도 제자들과 격의 없이 놀러 간 대학 엠티 자리에서 큰 사발에 약주를 즐기며 “나는 밤하늘에 달빛을 마셨노라”며 호연지기로 삶의 멋도 전했다.
1919년 평안북도 영변 출생인 김규영 교수는 경성제국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문리과대학 시간강사, 동국대ㆍ서강대ㆍ가톨릭대에서 철학 교수를 지냈다. 한국철학회 회장과 그리스도교철학연구소 회장을 역임했고, 1981년 대한민국 학술회 회원(서양철학)으로 임명돼 활동, 1988년 대한민국학술원상을 받았다. 서울 제기동본당 총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해방 전후 이렇다 할 교양ㆍ철학 서적이 전무하던 시절 김 교수는 늘 자신이 골몰한 학문을 명언과 시를 곁들여 가르치고, 교실 밖에서도 제자들과 대화를 즐긴 ‘참 스승’이었다.
김 교수는 생전 “제게 철학은 신앙으로의 다리였다”고 할 정도로 영세 후 매일 새벽 미사에 참례하고, 50년간 레지오 마리애에서 활동하며 철저한 신앙적 삶을 살았다. 코흘리개 유년 시절 주일학교 교사의 “주일학교는 왜 나옵니까”란 질문에 혼자 “하느님 말씀 들으러 나오죠”라고 답했고, 중학 시절 인체 기능을 설명하는 생물 교사에게 “하느님 마음은 어디서 나옵니까”란 기특한 질문을 던진 학생이었다. 그는 가톨릭대 재임 시절에는 신학생들의 철학 스승으로서 신앙과 학문을 넘어 도(道)를 추구하는 구도자의 철학관을 전수했다.
송석구 전 동국대 총장은 책에서 “선생님은 그 곧은 걸음처럼 오직 하나만 생각하신다. 생각에 깊이 잠기셨을 때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못하신다”고 회고했고, 황경식(라파엘,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대학 시절 늘 강의노트와 책을 보자기에 고이 싸서 다니신 김 교수가 늘 학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 강의를 시작한 일화를 전하고 있다.
추모문집간행회 회장 진교훈(토마스,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해방 이후 교육 여건이 녹록지 않았던 시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김 교수님이 전하고자 한 철학은 곧 신앙이었다”면서 “평생 청빈한 삶을 지향하며 모범이 된 교수님의 뜻이 영원히 기억되도록 추모사업을 계속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문의 : 02-567-3595, 태암김규영교수추모문집간행회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시간을 넘어서 영원으로 - 태암 선생님을 기리며
태암김규영교수추모문집간행회 지음 / 시와진실 / 1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