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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맛에 기도 더해 수도자들 밥상 차리기만 50여 년

봉헌 생활의 날(2월2일)에 만난 사람-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이용선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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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총원 주방 소임을 맡고 있는 이용선 수녀가 양파, 파 등 각종 식재료가 준비돼 있는 주방에서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수녀원 주방은 처음이다. 수녀원 자체가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지만 주방은 더욱 그렇다.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표지가 이곳이 수녀원에서도 내밀한 공간임을 알려준다.


서울 청파동에 자리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총원의 주방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한때는 매일 삼시 세끼 끼니 때마다 150인분의 음식을 장만하던 곳이다. 가스 화덕 위에 놓인 대형 무쇠 가마솥에선 흰 김과 함께 밥 익는 냄새가 피어나고 있었다. 커다란 프라이팬엔 바삭한 멸치조림이 한가득이다.


시끌벅적할 것이라 상상했던 수녀원 주방은 침묵에 가까울 만큼 조용하다. 도마 위 칼질 소리도, 음식 재료를 다듬는 소리도, 조리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오직 수돗물 소리와 거친 김을 뿜어내는 가마솥 소리만이 침묵을 깬다. 주방일도 기도로 봉헌하는 수녀들의 정성이 고요와 침묵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이용선(안나, 76) 수녀는 52년째 주방 소임을 맡고 있다. 1966년 입회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주방을 떠난 적이 없다. 그는 ‘안나’라는 수도명이 있지만 언제나 “주방 수녀”라고 불린다.




- 주방 수녀라는 말이 싫겠다



“수녀원에 들어와 처음부터 주방일을 했다. 주방 소임을 맡았으니 주방 수녀라 불리는 건 마땅하다. 모두 박사가 되면 어떡하나. 나 같은 사람도 수녀원에 있어야지. 모든 게 다 하느님의 일이다. 서러움 같은 건 없다.”




-주방에서도 수련이 되는지


“수도자는 으레 순명하고 살아야 한다. 주방이 성지다. 칼을 비롯해 각종 형구가 다 있지 않나. 나는 이곳에서 순교자들을 묵상하며 산다. 어떠한 처지라도 웃으며 살고 자매들에게 봉사하면서 하느님께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주방 수녀들은 다른 수도자들보다 늘 30분 일찍 일어난다. 늦어도 새벽 4시 30분에는 주방에서 음식을 해야 한다. 다른 수녀들이 함께 모여 성당에서 기도할 때 개별적으로 기도를 바치고 미사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 원래 음식을 잘하셨는지


“20대 중반에 입회해서 부엌 일을 처음 배웠다. 밥물 맞추는 거, 김치 써는 거 하나하나 모두 배웠다. 초기에는 수도원 살림이 몹시 가난해 늘 수제비로 허기를 달랬다. 반찬도 김치 하나뿐이었다. 손님 신부님이 오시면 달걀 하나 얻어서 계란탕을 해 드리는 게 큰 대접이었다.




-주방은 쉬는 날이 없지 않나


“밥은 매일 먹어야 하니까. 늘 긴장 속에 살아야 한다. 일이 바쁘면 ‘성모님, 마리아, 마르타 성녀님 맛있게 요리해 주세요’라며 화살기도를 바친다. 또 조리하면서 예수 성심, 성인 호칭, 시복 청원 기도 등을 바친다. 수도원 음식은 기도로 만들어진다.”


50년이 넘은 주방살이에 애환이 왜 없을까. 한겨울 찬물에 손이 얼어 손등이 갈라지고 터져도 참아냈지만 그에게도 마음 아팠던 추억이 있다.


“수련기 때였다. 신부님이 편찮으시니까 남대문시장에 가서 보신탕을 사오는 심부름을 했다. 주전자를 들고 보신탕집에 갔는데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젊은 수녀가 보신탕집을 배회하니 시장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이것도 수련이라고 생각했지만 엄청 마음 아팠다.”




-가난했던 시절 어떻게 지내셨는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수도원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 배급받은 쌀로 빵과 국수, 수제비를 해 먹었다. 그때 한 자매가 ‘고구마 줄기라도 배불리 먹어봤으며 좋겠다’고 해 웃음 반 눈물 반을 쏟아냈다.”


지금도 주방일을 하는 이 수녀를 동료들은 ‘성인’이라 부른다. 그럴 때마다 이 수녀는 “한국 교회에 103위나 되는 많은 분이 성인이시니 난 안 된다”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 수도생활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처음 소임을 받았을 때 주방에서 성녀가 되리라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50년을 지내고 보니 수도생활은 함께 모여 살고 나누고 의지하며 서로가 성화될 수 있도록 참아주고 배려하고, 상대를 통해 배우는 삶이라는 걸 깨닫는다. 요즘 수녀들을 보면 긴 세월 고비마다 어떻게 다 넘기고 살까 걱정하다가도 행복하게 사는 걸 보면 감사하다. 수도생활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살이다. 우리의 소임은 그 사랑의 표시다. 그래서 수도자가 하는 일은 귀함도 천함도 없다. 하느님 앞에 다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수녀는 “수도생활을 하면서 얼굴을 드러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장상의 뜻에 ‘예’라고 대답해 인터뷰하지만 내세울 게 없다”고 수줍어했다.




글·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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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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