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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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발을 씻어주어야"

서울대교구 손희송 주교, 가톨릭대 신학대 주님 만찬 미사 강론(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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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교구 손희송 주교가 29일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중 발씻김 예식을 하고 있다. 박수정 기자
 

부모는 자기가 낳고 기른 자식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식이 부모의 그런 마음을 깨닫고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과 보살핌은 인생여정에서 만나게 될 갖가지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에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부모의 심정으로 최후만찬 중에 제자들을 위해 성체성사를 세우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세상 끝날 때까지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그들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부모의 사랑이 담긴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시면서 자녀들이 성장하듯이 예수님의 사랑이 듬뿍 담긴 성체와 성혈의 힘으로 제자로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차 제자들은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면서 수많은 난관을 만나게 될 터인데, 예수님의 제자로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승의 헌신적 사랑이 담긴 성체와 성혈을 먹고 마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최후 만찬에서 당신의 극진한 사랑을 또 다른 방법으로 각인시켜주시고자 열 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십니다. 제자들은 잘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스승 곁에서 머물면서 스승과 함께 먹고 마시고 다녔지만, 스승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마지막까지 세속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의 기대에 못 미칠 뿐만 아니라 곧 당신을 등질 것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스승을 팔아넘길 마음을 품고 있었고, 베드로는 위기의 순간에 스승을 세 번 배반할 것이며, 다른 제자들도 스승을 버리고 도망갈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샌들을 신고 다녔기에 발이 먼지투성이가 되기 쉬웠고,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오면 반드시 발을 씻었습니다. 손님을 초대하면 그 집의 종들이 손님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먼지로 더러워진 발을 씻어주는 것은 종들이 하는 비천한 일이었습니다. 스승이 종처럼 제자들 발을 씻어준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파격적인 행동을 통해 당신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사실을 제자들 마음에 깊이 각인시켜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을 앞둔 암울한 상황에서, 제자들의 배신이 예상되는 참담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성부의 뜻에 따라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어둠이 깊어가는 상황에서도 어둡다고 불평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촛불 하나를 밝히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처럼 행동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다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던 예수님은 이 자리에도 현존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다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이 말씀을 충실히 실천할 때 교회는 주님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게 되어 사람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신뢰를 근간으로 살아갑니다. 근래에 부끄럽게도 일부 사제들의 잘못으로 인해 우리 교회는 이 소중한 신뢰를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영혼을 돌보는 것이 사목자의 본분인데, 잘못된 행동으로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겨 병들게 했기 때문입니다. 잘못으로 인해 흔들리고 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분이 그러셨듯이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섬기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발을 씻어주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윤리적 권위가 뒷받침되지 않는 그 어떤 형식적, 관료적, 법적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 시대는 권위를 행사할 때 일종의 겸손, 곧 내적인 봉사 정신과 아울러 외적인 겸양을 요구합니다. 사람들은, 공직자들에게 특별히 성직자들에게 이런 점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주님의 제자인 성직자들이 겸손하게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내면에 출세욕구, 무사안일, 지위남용이라는 세속적인 욕심이 서서히 들어차게 됩니다. 그런 성직자는 짠 맛을 잃은 소금처럼 내쳐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범으로 보여주신 겸손한 섬김을 온 마음으로 실천할 때 성직자는 성직자답게 되어 백성인 교회와 사랑의 공동체로 성장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신학생 여러분,
 

  교회가 기대한 만큼 신앙과 사랑의 공동체가 되지 못한다고 해서, 함께 사는 사람들이 못나고 무능하다고 해서, 한 마디로 주위를 둘러봐도 실망과 낙담할 것만 보인다고 해서, 불평과 불만 속에 살아가지 맙시다.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사랑하는 제자의 배반이라는 극히 실망스러운 일을 예상하시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사명에 충실했던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실망과 낙담의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제자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주님 사라의 징표인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당신 아들 예수님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밝히신 촛불 하나로 부활이라는 찬란한 빛을 만드셨습니다. 당신 아들을 죽음에서 불러일으키신 하느님은 실망과 절망에 굴하지 않으려는 나의 작은 노력, 우리의 작은 노력으로 당신이 뜻하시는 큰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믿는다면, 그분이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우람한 나무로 자라나게 하실 수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섬기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매 미사 때마다 성체를 통해 당신의 고귀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십니다. 그 사랑에 힘입어서 우리도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사랑이 겨자씨처럼 작다고 해도 하느님께서는 그것으로 세상의 변화라는 풍성한 결실을 이루실 것입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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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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