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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명화] (18) 4월 이야기&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차가운 도시속 따뜻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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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4월 이야기’포스터.

▲ 에드워드 호퍼 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첫사랑이란 단어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아련하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첫사랑이 있다. 설렘, 서투름, 순수, 수줍음을 간직한 첫 기억을 말하는 동안 우리들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아쉬움을 살짝 가리는 웃음인지, 그리워서 행복한 웃음인지 사실 잘 모르지만.

일본 영화 ‘4월 이야기’는 첫사랑 이야기이다. 영화는 우즈키가 대학 입학을 위해 도쿄로 출발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온통 대지를 덮을 듯 휘날리는 벚꽃은 그녀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듯 관객의 마음마저 설레게 한다. 영화 속 배경인 도쿄 도심의 중심부에 위치한 무사시노시는 벚꽃이 아름다운 우에노 공원을 비롯하여 상점가와 주택가가 공존한다.

선배 야마자키를 짝사랑한 우즈키의 학교 성적은 그저 그랬다. 하지만 그녀는 야마자키가 진학한 무사시노대학에 합격한다. 선생님은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마음속으로 ‘사랑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되뇐다. 겨울이 긴 홋카이도에서 사랑의 힘으로 홀로 대도시 도쿄에 온 그녀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았다.

영화를 찍을 무렵, 배우 마츠 다카코는 자신이 연기한 열아홉 살 우즈키와 같은 나이였다.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판에 박힌 고독은 오히려 첫사랑에 빠진 우즈키를 돋보이게 한다. 풋풋한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쿄는 설렘 그 자체였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내가 경험한 도쿄는 1인용 식탁으로 꾸며진 식당이 즐비하고, 번듯하게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어딘가를 바삐 가는 그런 곳이었다. 감독은 대도시의 고독에 우즈키식의 막무가내 첫사랑을 대비시켰다. 작은 촛불처럼 따스한 그녀가 첫사랑을 찾아 헤매며 보여준 도쿄는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도시 그림을 연상시킨다.

뉴욕에서 태어난 호퍼는 극장, 주유소, 모텔, 야간 식당 등 미국적인 도시 풍경을 유화와 수채화로 많이 그렸다. 당시 경제 대공황을 겪은 미국의 대도시들은 그 어디보다 공허했다. 호퍼는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을 통해 고독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호퍼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역시 도시의 밤 풍경을 그렸다. 야간에 문을 연 식당은 쇼윈도를 통해 그 안을 비춘다. 그림 속 인물들은 어딘지 모르게 서로의 관계가 모호하다. 가깝게 앉은 잘 차려입은 신사, 숙녀의 손은 닿을 듯 말 듯하지만 각자 다른 생각에 사로잡힌 듯하다. 둘 사이는 가깝지만 혼자만의 고독에 둘러싸였다. 현대의 극사실주의 그림과 팝아트에 영향을 준 호퍼의 작품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실존하는 도시인의 감성이다.

우즈키가 만나는 영화 속 인물과 호퍼가 그려낸 도시인의 표정이 시공을 초월하여 무척이나 닮았다. 무표정한 가면 속에 겹겹으로 감춰진 외로움은 첫사랑의 기억을 잊은 채 오랫동안 차가운 도시에서 산 우리들의 여린 속살이다. 우즈키가 미소를 잃지 않은 이유에 공감한다면 당신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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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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