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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스승 노사제에게 인생을 배우다

스페인어 교습으로 만난 청년과 노신부 지혜·역사 담긴 이야기 보따리 38편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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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빠드레

배혜은 글·그림 / 바오로딸



외국어를 배워본 사람은 누구나 네이티브 스피커와 ‘튜터링’, 그러니까 현지인과 일대일 교습을 경험하거나 적어도 생각은 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낯선 이에게 낯선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말을 잘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른 영역이며, 배움의 의지가 꾸준히 이어지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려 1년간 이 지리한 교습 시간을 행복하게 엮어간 이들이 있다. 바로 곧 아흔 살을 앞둔 하비에르 아라졸라 엘오르사(도미니코수도회) 신부와 어느덧 서른 살이 된 배혜은(소피아)씨다.

“하비에르 신부님은 딱딱한 문법이 아니라 키워드를 중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니까 마치 할아버지 얘기를 듣는 것처럼 재밌고 다음 시간이 기다려졌어요.”(배혜은 작가)

“나는 외국인이라 겉모습도 다르고 게다가 사제라서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활달한 소피아를 만나 편하게 대화하는 시간이 즐거웠어요.”(하비에르 신부)

수업이 진행됐던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도미니코수도원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그동안 켜켜이 쌓인 시간과 대화들 덕분인지 그들에게는 국적, 나이, 성별, 신분을 뛰어넘는 친숙함이 느껴졌다.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스페인 지도와 최근 배혜은씨가 출간한 「올라 빠드레」가 놓여 있었다.

“하비에르 신부님과의 수업 때 항상 기록을 했거든요. 그런데 저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운 정말 좋은 말씀이 많은 거예요. 한 예로 중국에서 박사과정 중인 저에게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도체오(doceo)’에서 유래한 ‘독토란다 doctoranda(박사가 되어가는 사람)’라는 단어를 알려주셨어요. 석사는 자신이 탐구하는 분야에서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는 의미이고, 박사는 이를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선 사람이라고요. 단어의 어원과 뜻을 알게 되니까 더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더라고요. 이렇게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엮었더니 자연스레 한 권의 책이 됐어요.” (배혜은 작가)

하비에르 신부는 이야기보따리일 수밖에 없다. 프랑스와 인접한 스페인 북쪽의 작은 마을 바스크에서 태어나 14살에 신학교에 들어간 뒤, 20대부터 네덜란드와 미국을 거쳐 필리핀에서 30년, 우리나라에서 30년째 선교 생활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계를 경험하고 기도와 영성으로 깊어진 지혜는 고스란히 대화에 녹아들었고, 배혜은씨는 이 가운데 38편의 에피소드를 책으로 펴냈다.

“책을 써보겠다고 해서 처음에는 우리끼리 편하게 나눈 대화가 어떻게 책이 되느냐고 되물었어요. 그런데 책을 보니까 내가 했던 얘기가 다 적혀 있는 거예요(웃음).”(하비에르 신부)

“요즘 사회적으로 세대 차이도 심하고, ‘꼰대’, ‘라떼’ 등 윗세대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단어도 많잖아요. 그런데 제가 하비에르 신부님을 통해 알게 된 진짜 어른들은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와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안에 금은보화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청년들이 멀리서 멘토를 찾을 게 아니라 주변의 이웃, 어른들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배혜은 작가)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하이베르 신부는 틈만 나면 고향 이야기를 했다. 그야말로 기승전‘스페인’이었다. 90년이라는 긴 삶의 여정 동안 스페인에서 생활한 기간은 10여 년에 불과한데, 고향이란 그런 것일까.

다행히 하비에르 신부는 지난해 고향을 방문할 수 있었다. 당시 가족들이 ‘소피아’를 초대했지만, 연령대에 따라 코로나19 백신을 맞는 시기가 달라 안타깝게도 함께 할 수는 없었다.

“가족들이 소피아가 언제 오느냐고 기다려요. 아마 스페인에 가면 말을 유창하게 잘할 거예요.”

실제로 이른바 초중급이던 배혜은씨의 스페인어 실력은 하비에르 신부님을 만난 후 중상급으로 높아졌다. 그뿐인가, 계획에도 없던 책을 펴내게 됐다. 무엇보다 ‘값진 인생’을 배웠고, 또 ‘좋은 친구’를 얻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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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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