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뜻을 사는 부활의 길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 인사를 전해드립니다. 참으로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이 승리한 것이고, 진리와 선과 사랑이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실상 헛된 것이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입니다.”(1고린 15, 14)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교도 없습니다. 오늘은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계시된 날이고, 인생의 의문이 해결된 날이며, 구원의 실마리가 풀린 날입니다. 비록 우리 자신이 죄 때문에 죽을지라도 이제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성령께서 죽을 우리까지도 살려주실 것”(로마 8, 11)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까지는 어두움과 죽음의 고통스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부활의 신비는 주님의 뜻 안에서 침묵 속에서만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 금요일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침묵, 성 토요일의 무덤을 덮는 죽음의 침묵, 부활 아침 제자들이 놀라서 바라보던 빈 무덤의 침묵 속에서 비로소 부활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 금요일은 주님 수난의 날이고, 성 토요일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과 연대를 맺으신 날입니다. 이 시간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죄악과 폭력으로 얼룩지고, 죽음과 고통의 의문에 휩싸인 이 세계를 당신 사랑으로 품어 안으신 때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이 온 세상에 드러난 날입니다. “죽음보다 더한 사랑”(아가 8,6)이 승리한 날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소리 높여 선포하면서도 침묵 속에 침잠해야만 부활 사건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를 압박해오는 이 나라 현실이 주고 있는 침묵 속에, 깊이 잠겨야 주님의 부활의 길을 참으로 이해할 수 있고, 오늘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는 3년이 넘는 코로나 상황과 1년 전부터 계속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미얀마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내전, 최근에는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지진, 전 세계적으로 다가오는 기후 위기 등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의 아픔과 상처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옵니다. 무엇보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10년 전 교황으로 즉위하신 후, 세계적인 문제와 교회의 여러 문제 앞에서, 올바른 쇄신과 변화의 과정을 통하여 이러한 고통과 아픔의 상황이 결코 서로 무관하지 않고 그러한 이면의 자리엔 인간들이 가진 개발의 탐욕이 있고 그로 인한 생태 파괴의 현실들을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교종께서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노달리타스의 길인 ‘함께 걸어가는 여정’에서, 주님의 뜻을 찾아가는 통합된 식별의 단계를 제안하고, 모두가 형제애에 기반한 올바른 해결을 위한 책임과 사명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한국 사회는 이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러 가지 개발의 광풍으로 인해, 점차 한반도를 넘어 아름다운 제주의 보물 역시 근본적으로 위협받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2공항 문제에 대한 환경부의 전략 환경영향평가의 조건부 통과 발표와 국토부의 기본계획안 고시는 무엇보다 국가가 추진하는 미래를 향한 진지한 고뇌의 문제이기보다, 제주가 가진 가장 소중한 보물인 청정 제주의 모습을 이제는 더 이상 지켜낼 수 없는 위기 촉발의 순간을 맞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엔 제주의 지속 가능성과 미래 지향성에 대해 도민이 가진 올바른 결정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야말로, 주님의 뜻을 찾아가기 위해, 보다 더 제주도민의 선택을 분명히 해야 하는 시간이라 여깁니다. 올해는 또한 제주도민의 아픔과 상처의 질곡이 깊은 제주 4·3 75주년과 관동 대지진 당시 계엄령과 유언비어가 불러온 조선인 학살사건이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맺은 정전 협정 역시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역사 앞에서 그리고 닥쳐온 위기들 앞에서 어둠의 세력에 저항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힘이 다시금 필요함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부활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의 감수성을 온전히 전해주셨고 우리는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창조적 의지를 깊이 신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뜻을 선택하여 지금 이 세상을 파괴하고 있는 세력에 대하여 눈을 감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악과 죽음에 대항하고 이기심을 극복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축복이 되어야 할 이 세상의 삶이 죄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깨어나야 하겠습니다. 부활이 가르쳐주는 위대한 진리는 우리가 죽음 후에 새롭게 산다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힘으로 지금 여기서부터 새롭게 산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길입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 모두의 가정이 부활의 축복으로 평화의 나날이길 빕니다.
2023년 부활절에
천주교 제주교구 감목 문 창 우 비오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