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마태 28,8)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예수님 부활의 기쁨이 전후방 각지에서 애쓰고 계신 교구민과 병사들 모두에게 가득 전해지길 기도합니다.
부활 축하의 의미
부활 시기가 시작되면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적으로 서로 부활 축하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나누는 이 축하 인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체험으로부터 오는 기쁨의 탄성이자 이분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시라는 믿음과 희망의 고백입니다. 기쁨 안에서 전하는 주님 부활의 나눔은 ‘지금 여기’에서 부활을 몸소 살아낼 수 있게 합니다.
떠나야 할 무덤들
부활을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활을 산다는 것은 무덤을 떠나는 일입니다. 무덤 앞에서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여인들은 곧바로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 길 위에서 여인들은 예수님을 마주합니다.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평안하냐?”고 물으십니다. 이처럼 무덤을 떠날 때,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가 부활을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무덤을 떠나지 못한다면 진정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떠나야 할 무덤들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나만 더 부유하게 살고자 하는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행태, 인간관계 안에서 나만 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자기중심적인 마음, 명예에 대한 탐욕, 다양한 형태의 성장 우선주의 등이 여기에 속할 수 있습니다. 이 무덤들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들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내가 인정받기 위해 애쓰기보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나서야 합니다. 나의 명예를 위해 누군가를 고통으로 밀어 넣는 행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라는 세상에 갇혀 있기보다 ‘너’에게 달려가야 합니다. 인간만을 위한 우선적 발전을 벗어나 생태환경을 보살피는 마음도 갖춰야 합니다. 이처럼 각자의 무덤을 떠날 때,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부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올해 2월, 튀르키예 동남부와 시리아 북부 일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지진의 희생자와 그로부터 고통받는 이들의 소식을 접한 교구민들께서 함께 기도하셨고, 사랑의 성금을 모아주셨습니다. 부활 시기가 시작되는 오늘도 여전히 기도와 행동으로 사랑을 전하시는 분들이 계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내 자리를 벗어나 몸소 부활을 살아내는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군종교구장으로서 지금도 튀르키예의 재건과 구호 활동을 펼치고 계신 군인과 봉사자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서로 자리한 곳은 달라도 튀르키예와 시리아 곳곳에 예수님의 사랑과 부활의 기쁨이 따스하게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부활의 증거와 선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군종교구는 올해 “선교의 열매, 세례성사!”라는 표어 아래 이웃과 동료들을 세례성사의 은총으로 초대하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과거 부활 대축일이 찾아올 때면 성당이 많은 군 장병들로 붐볐지만, 이제는 성당에서 부활의 기쁨을 함께 맞이하는 이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이런 현실 안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사목교서의 내용을 이행하려면 사람들에게 부활 소식을 더욱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기에 돌이 굴러진 무덤 안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로 입구가 막혀 있어 부활을 못 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천사가 돌을 굴리고 무덤이 열린 것은 여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확인하게 해주시려는 배려였습니다.
여인들과 제자들은 빈 무덤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만날 많은 사람들 또한 우리가 보여줄 빈 무덤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선교입니다. 신앙을 담아 보여줄 빈 무덤을 통해 선교의 열매가 익어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고 우리의 구원자이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아직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부활의 신비를 전하기 위하여 우린 부활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러니 신앙인의 삶을 막고 있는 다양한 돌들을 치우고 빈 무덤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달려 나갑시다. 무덤을 벗어나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한 곳으로 향합시다. 그 길 위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며 기쁨을 누릴 것이고, 세상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부활의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지금, 함께 전하는 부활 소식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던 이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함께 달려갔습니다. 올해 사목 표어인 “선교의 열매, 세례성사!”를 향한 우리의 여정도 홀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군종교구민 모두가 함께 가는 길입니다. 비신자뿐만 아니라 ‘쉬고 있는 신자’들을 독려하여 함께 부활하신 주님께 나가는 신앙의 여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기쁨 안에서 이 길을 끊임없이 걸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 노력은 내일 행해야 할 자세가 아닙니다. 내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지금’ 움직여야 할 모습입니다. 그러니 부활의 기쁨을 전하러 지금 무덤을 떠나갑시다. 무덤을 떠나 몸소 부활을 살아갑시다. 아멘.
2023년 주님 부활 대축일
천주교 군종교구장 서상범 티토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