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영화 베테랑에서 배우 황정민이 말한 대사입니다. 황정민이 연기한 서도철 형사는 동료 형사가 뇌물을 받고 편파 수사를 하자 이렇게 말합니다. 돈과 권력에 굽신거리지 말고 바르게 살자는 말로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명대사입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당당하게 살자는 말일 것입니다.
또한 이 명대사처럼 일명 586세대라 불리는 정치인들에게는 도덕적 자신감이 있습니다. 돈과 권력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피와 땀으로 이룬 민주화는 586세대의 도덕성을 말해줍니다. 지금의 국민의 힘을 과거에 ‘차떼기 정당’ ‘성누리당’이라고 부르며 정치공세를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586세대 정치인의 도덕적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아는 사업가로부터 10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정근 민주당 사무부총장에게 1심 법원은 4년 6개월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사업가 박 모씨는 법정에서 ‘이 부총장이 빨대를 꽂고 빠는 것처럼 돈을 요구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자신에게 조카 전세 자금까지 요구해서 싫은 내색을 보였더니 이 부총장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느냐’는 말로 화답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 부총장 개인비리로 끝나는 줄 알았던 사건이 민주당 전체 사건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결정적 증거는 이 부총장의 휴대전화입니다. 이 부총장의 휴대전화에는 2만 여개의 통화 녹음파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때 송영길 후보의 당선을 위해 당내 국회의원에게 돈 봉투를 전달한 정황이 녹음 파일이 있는 것입니다. 돈 봉투를 받은 국회의원 실명도 나온다고 합니다. 검찰이 지금까지 2만 여개 녹음 파일 중 일부만을 들어 보았다고 하니 얼마나 더 큰 일이 밝혀질까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586세대 정치인의 도덕 불감증입니다. “고작 300만원” “기름값 식대 수준” “야당 탄압을 위한 정치검찰의 기획 수사”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당사자들은 정치 검찰의 야당 탄압이라고 했습니다. 녹음 파일에 실명으로 거론된 이들에게 물어보니 아무도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구체적 정황이 담긴 녹음 파일이 계속 나오자 결국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사과했습니다. 더욱이 이번 사건에 연류 된 이들 대부분이 586세대 정치인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던 도덕성이 해이를 넘어 불감증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전문가들은 세상을 단 두 가지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이원론에 빠져 있을 때 도덕불감증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우리는 절대 선이고 저들은 절대 악이라는 이분법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내가 잘못을 해도 이것은 악을 없애고 선을 이루기 위한 도구나 과정이라는 겁니다. 여기에 무조건 응원하는 정치 팬덤까지 더해지면서 그렇게 당당하던 586세대 정치인의 도덕성은 손상을 입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된다.’는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시면서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거짓이 아니라 진리를 찾는 깨끗한 마음을 소중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돈 봉투와 망가진 양심’입니다. 돈과 권력 앞에서 망가진 양심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라 깨끗하고 정직한 양심을 가진 정치인이 많아지기를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