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써온 대한민국. 처음 1위에 오른 2004년부터 2021년까지, 6·25 전쟁 국군 전사자보다도 10만 명 더 많은 약 24만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자살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낙인 탓에 유가족이 사망신고서에 ‘자살’로 기재하는 경우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렇다 보니 가장 극심한 타격을 입은 자살 유가족은 애도조차 제대로 못 하고 끝없는 죄책감과 수치심에 갇혀 고통받는 현실이다. 이들 중 91가 우울함을 느끼며, 일반인과 비교해 자살 생각은 6.48배, 자살 시도는 7.64배나 높은 정신건강 고위험군이기도 하다.
이 같은 현실에서 종교계가 자살 유가족을 더욱 이해하고, 이들이 적절한 애도 과정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 돌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가톨릭 등 4대 종단과 서울특별시가 함께하는 ‘살(자) 사(랑하자) 프로젝트(이하, 살사 프로젝트)’는 17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유가족 돌봄’을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이범수(동국대 불교대학원 생사문화산업학과) 교수는 기조강연에서 “죽음을 인정하는 과정을 제대로 못 거친 자살 유가족은 밤송이처럼 안으면 아프고 피가 나는데도, 고인을 품에서 못 놓고 있다. 영영 못 만나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라며 “극단적으로 가면, 죽어서 고인을 만나자는 생각에 또 다른 자살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이면에는 사회적 시선과 낙인 때문에 장례식을 거행하고도 조문을 받지 못함으로써 진정한 애도나 위로받을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상실감이 있다.
이 교수는 “종교는 자살 유가족이 고인의 죽음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단계부터 큰 도움을 준다”며 “의례는 영혼과 영성과 현실을 이어주는 하늘의 사다리다. 각 종단은 유족에게 적극적으로 종교 의례를 베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가톨릭과 개신교·불교·원불교, 서울시는 저마다 자살 유가족을 위해 제공하는 자살 예방 활동을 소개했다. 이들은 공통으로 사별의 아픔을 공유하는 유족들이 함께 모여 슬픔을 표현하며 건강한 애도를 경험하도록 돕고, 자살예방전문가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 센터장 차바우나 신부는 “유가족 자조 모임에 참여한 이들이 ‘상담이나 치료를 받아도 부족했던 부분이 비로소 채워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면서 “이는 종교를 통해 영적인 위안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종교계가 하기에 가장 적합한 일이 바로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며, ‘자살 예방’”이라고 강조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는 매달 셋째 토요일 오전 10시 가톨릭회관에서 유족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묵주 기도를 바친다. 매달 자조 모임에도 약 50명이 참여한다. 또 1박 2일 피정과 야외 도보 성지순례도 하며, 명동 1898광장에서 자살 예방과 위로를 전하는 묵주 기도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