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에 따른 파행 끝에 막을 내렸지만, 새만금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잼버리 폐영 직후 사업 적정성 논란과 환경파괴 우려가 큰 새만금국제공항 건설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까닭이다. 국토교통부는 새만금신공항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아직 진행 중인데도 8월 14일 공항 건설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을 개시하고, 17일 마감했다.
이에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17일 세종정부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찰 취소와 공항 사업 철회를 촉구했다. 공동행동은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 협의 여하에 따라 건설 여부가 결정됨에도 불구하고 건설할 업체부터 선정하고 계약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며 “환경부가 동의하지 않아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계약 파기로 인한 손실은 모두 예산 낭비가 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망한 잔치는 끝났다”며 “정부는 새만금 잼버리를 명분으로 예타(예비타당성 조사/ 이하 예타)를 면제한 새만금신공항 사업을 철회하라”고 역설했다. 새만금신공항은 B/C(비용 대비 편익)가 0.479로 경제성 판단 기준인 1.0을 크게 밑돌았으나, 2019년 문재인 정부 당시 국가 균형발전사업으로 선정돼 예타 조사를 면제받았다.
이를 두고 공동행동은 “새만금신공항 사업은 지역균형발전을 실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을 위해 추진이 필요한 사업도 아니다”며 “문재인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명목으로 새만금신공항을 예타면제 사업으로 선정한 것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빨라야 2028년에 완공될 수 있는 공항을 두고 2023년 잼버리를 위해 예타 조사를 면제해달라는 전북 정치권의 우롱과 사기에 1조 원에 가까운 국가 예산이 낭비될 상황”이라며 “새만금신공항은 전북도민을 위한 것이 아닌, 거대 토건자본의 이윤을 위한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현재 국내 15곳 공항 가운데 인천·김포·김해·제주 등 4곳을 제외한 나머지 11곳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공동행동은 “이미 만성 적자인 군산공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 공군 제2 활주로 증설에 불과한 또 하나의 공항을 짓기 위해 수라갯벌이 매립될 위기에 처했다”고 설명했다.
새만금신공항 계획부지인 수라갯벌은 간척사업으로 매립되지 않고 남아있는 새만금 마지막 갯벌이자 연안습지다. 갯벌은 기후위기 원인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다양한 생물 종의 서식지 역할을 한다. 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호)를 비롯해 정부가 지정한 50종 이상의 멸종위기 보호종 등 수많은 생명이 살고 있다. 특히 수라갯벌은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서천·고창갯벌과 같은 생태권역을 이뤄 보존가치가 크다. 공동행동은 “새만금신공항 사업은 기후위기와 생물 다양성 붕괴를 막기 위한 국가적·전 지구적인 노력에 어긋나는 심각한 역행이자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김나희 홍보국장 인터뷰
“3~4년 전부터 꾸준히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파국을 맞을 거라고 경고해왔어요. 농어촌공사와 새만금위원회도 고발하고 기자회견도 자주 열어 성명을 발표했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았죠. 하지만 이제는 기사화도 많이 되고, 급하게 일정을 잡아도 취재진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많이 오세요. ‘파국을 보고 나서야 믿는구나. 그 전에 믿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전화위복이라고 이번을 계기로 새만금신공항 사업을 중단하도록 하고, 수라갯벌도 살려야죠.”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김나희(마리아 도메니카) 홍보국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서울 출신이면서도 20년 넘게 새만금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았다. 2003년 문규현(전주교구 원로사목자) 신부가 새만금 사업 백지화를 요구하며 65일간 삼보일배할 때 그도 함께였다. 당시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300㎞에 이르는 여정의 출발지는 부안 해창갯벌이었다. 지금은 매립돼 사라져버린 곳이다.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다름 아닌 ‘농업용지’로 조성된, 새만금 잼버리 야영장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갯벌 어민 2만 명 정도가 실향민이자 도시 빈민이 됐어요. 그런데 이제 하나 남은 마지막 수라갯벌마저 메워 경제성도, 필요성도 없는 공항을 짓는대요. 그것도 미군기지가 있어 안보 문제 때문에 제일 가까운 중국 노선도 취항하지 못하는데 말예요. 바로 옆 군산공항도 4월부터 운영을 중단한 상태라, 잼버리 때문에 새만금신공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허구였음을 알 수 있죠.”
김 국장은 “갯벌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는 연간 26만 톤”이라며 “갯벌을 보존하고, 이미 메운 것까지 다시 재자연화해도 모자랄 기후위기에 탄소를 배출하는 공항을 만드는 것은 공동의 집인 지구에 불을 지르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온갖 생물과 어민들의 터전인 이곳에 공항을 짓는 이유는 가진 자들 배를 불리는 것밖에 없어요. 사업비 72는 건설사를 거느린 재벌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조사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새만금신공항 사업을 강행하는 전라북도청과 전·현 도지사를 이렇게 불러요. ‘21세기 탐관오리’라고.”
김 국장은 “갯벌 복원을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은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도 천막을 치고 600여 일째 농성 중이다. 국토부 장관을 상대로는 새만금신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 취소소송을 내기도 했다. 오는 14일 3시 20분에는 서울행정법원에서 세 번째 재판이 열린다. 김 국장은 “공개 재판이므로 누구나 방청할 수 있다”며 “많이들 오셔서 응원해달라”고 요청했다.
가톨릭교회도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에 힘을 보태는 중이다. 대전교구를 비롯한 각 교구 생태환경위원회와 가톨릭기후행동·멸종반란 가톨릭 등 교계 환경단체들이 연대하고 있다. 김 국장은 “저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며 “함께하고 싶은 분들은 제 번호(010-2820-8544)로 연락해 주시면 미사 공지 시간이든 모임이든 달려가 설명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수라갯벌 보존과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연명서를 발표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어느 본당, 어떤 단체든 좋습니다. 다양한 분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특히 전문성에 힘을 실어줄 경제학자와 공학자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고고학자나 생물학자도 환영입니다. 수라갯벌에선 고려청자 등 유물도 발견되고, 멸종위기종도 살고 있습니다. 꼭 지켜야 할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