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꽃이야!
운동장을 나오자마자 뒤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야! 아직도 글도 못 읽고 쓰기도 못하고 너 바보냐!”
“그러는 너는 나보다 달리기도 못하고 축구도 못하잖아!”
“넌 뭐가 그렇게 잘났어? 키도 작고 못 생긴게”
2학년 남학생 둘이 곧 주먹이라도 휘두를 기세로 씩씩거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봄 햇살이 좋아 바깥 놀이를 나왔는데 소란스러운 소리에 다른 학생들도 둘을 쳐다보며 긴장하고 있었다.
내가 나섰다. “친구끼리 놀리고 그러면 안돼요. 둘이 왜 말싸움을 하는거야!”
그러자 학생들은 “아니 강호가 먼저 저한테 글도 못 읽는다고 놀리잖아요.” “은호는 저한테 키도 작고 못생겼다고 했어요…!”라며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난 두 녀석을 중재해야 했다. 보통 때 같으면 서로 잘못을 뉘우치고 화해하라며 마무리지었겠지만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다툼이 종종 있었기에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마침 운동장 한 쪽에 동백나무가 보였고 꽃이 만개해 있었다. 그쪽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질문을 했다.
“애들아 동백꽃은 언제 피지?” “지금요.” “겨울에도 피어요.” “봄에 피어요.”
아이들이 대답하자 난 또 질문을 했다.
“그럼 여러분 집에 귤 나무 있지요. 귤 꽃은 언제 피지?”
“봄에요.” “귤 꽃은 향기가 좋아요.”
“그럼 해바라기는?”
“여름에도 피고 가을에도 피고….” 등등
아이들은 대답하느라 소란스러웠고 제법 진지한 모습에 웃음이 났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 동백꽃도 귤꽃도 해바라기도 모든 꽃들은 피는 시기가 다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꽃을 피우는 거란다. 봄에 피는 꽃이 있고 여름에 피는 꽃이 있듯이 동백꽃처럼 겨울부터 피는 꽃도 있지. 어떤 사람도, 넌 지금 피는 꽃이 아니야! 라고 말하지 않지요. 제주도는 사계절 꽃이 많이 피는데 언제 어느 때 봐도 꽃은 다 예쁘지요. 선생님은 여러분도 모두 꽃이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누군가는 글을 조금 늦게 읽을 수 있고 누군가는 5학년이 되어서야 달리기를 잘 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지금 제일 작은 친구가 어른이 되어서 보면 제일 클 수도 있지요. 지금은 못하고 늦기도 하겠지만 나중에 잘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 꽃이지요. 언젠가는 꼭 피게 되니까요.”
아이들은 잠시 조용해졌고 동백꽃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확실히 혼내는 것보다 효과가 있었고 아까 말다툼을 하던 녀석들을 바라보니 둘이 머쓱해 하며 서로 웃었고 난 고개를 끄덕이며 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흩어져 뛰어가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예전의 나는 도전은 키를 넘는 높이라 생각했고 내 아이들이 꽃을 피울 수 있게 때맞춰 물을 주는 역할에 충실하며 일상에 안주했고 조금은 시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 마흔다섯에 운명처럼 오게 된 제주에서 직업을 갖게 되고 공부도 하게 되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음을, 주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고 있다.
그리고 거름이 되었던 일들과 비와 바람을 견디며 여기까지 온 나에게 “잘 살아왔고 잘 할 거고 참 대견하다”라 혼잣말을 해보았다.
햇살을 받은 동백꽃이 더 붉어 보였다. 바람이 스치자 꽃송이가 흔들거리며 “넌 지금부터 활짝 피어나는 꽃이야”라고 말해주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