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사정없는 수녀님이었다. 수녀님이 어떻게 그렇게 잔혹할 수 있을까. 36년 전 그날 수녀님은 어린 소년의 가슴에 대못 하나를 쾅 박았다.
강원도 원주 한 성당 마당. 예쁘게 파랬던 잔디밭이었다. 수녀님은 소년 1명, 소녀 2명과 함께 둥글게 원 그리고 앉아 교리를 가르치셨다. 소년에게 있어서 수녀님은 등에 돋아있던 날개를 떼어내는 성형수술 받고 지상에 내려온 천사였다. 수녀님의 환하게 웃는 얼굴에선 광채가 났다. 약간 과장을 하자면, 수녀님 머리 뒤로 후광까지 보였다.
그런데 그 눈꺼풀이 벗겨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교리를 가르치는 수녀님의 치맛자락 위로 개미 한 마리가 기어올랐다. 잠시 후…. 개미의 운명은 참담했다. 손가락 튕겨 이마 때릴 때의 그 손 모양을 아는가. 수녀님이 정확히 그 손 동작을 취했다. 그리고 힘껏 개미를 튕겨 멀리 날려 보냈다. 개미에게는 하나의 참사였으리라.
소년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천사 같았던 수녀님이 보인 엄청난 준살상 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년은 이후 1개월 동안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간신히 마음을 추슬러 성당에 다시 나갔지만, 이제 환상은 깨졌다. 수녀님께도 퉁명스럽게 대했다. 소년의 마음은 그렇게 한동안 퉁퉁 불어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훗날 깨달았다. 늘 웃는 수녀님이라도 가끔 기분 나쁠 때는 웃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수녀님도 때로는 눈물 흘리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
대부분의 사람은 우상을 만든다. 이유는?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다. 우리는 혹시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상대방을 재단해서 보는 것은 아닐까.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녀님=천사’ ‘직장상사=천사’ ‘아내=천사’의 등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천사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천사의 나라가 된다. 내가 천사의 입으로 말하면 세상에 는 기쁜 소식이 넘쳐난다. 내가 천사의 손길로 세상을 어루만지면 세상이 치유된다. 이러한 천사됨의 길을 다르게 말하면 사랑의 길이다. ‘사람’의 ‘ㅁ’을 깎아 ‘ㅇ’으로 만들어, ‘사랑’이 되게 해야 한다. 나 자신이 사랑이 되고, 나 자신이 천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천사들이 주위에 몰려들 것이다.
최근 수녀님을 다시 만났다. 날개 떼어내는 성형수술 받고 세상으로 내려온 천사 수녀님도 세월은 비켜갈 수 없나 보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하다. 불쌍한 개미 이야기를 하자, 수녀님이 눈 동그랗게 뜨고 “내가 그랬어?” 하신다. 그리고 천사처럼 웃으셨다.
수녀님과 함께 36년 전 참사의 희생자였던 개미의 명복을 빌었다.
글 _ 우광호 발행인
원주교구 출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및 주간을 지냈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당평전」,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