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병을 앓았던 영국 아이가 법원의 결정에 따라 연명의료를 받지 못하고 최근 세상을 떠난 일이 발생했다.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던 부모의 요청에 교황청이 운영하는 로마의 어린이 의료기관인 제수밤비노병원이 나섰지만, 영국 법원은 이송조차 막았다. 고통만 안길 뿐 삶의 연장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늘날 ‘삶의 질’이 ‘생명 존엄성’과 충돌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둘은 양립할 수 없을까? 울산대 의과대학 구영모(토마스 아퀴나스)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18일 열린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제23차 정기 학술세미나 ‘생의 말기 쟁점과 과제’에서다.
구 교수는 “삶의 질을 유지하는 건 돌봄의 중요한 고려사항”이라며 “이를 위한 완화의료의 목적은 낮은 ‘삶의 질’을 근거로 돌봄 중단을 결정하는 데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가톨릭교회는 생명에 가격표를 붙이는 행위를 매우 경계한다. 구 교수는 “고통의 정도에 따라 매겨지는 생명의 질에 대한 가치는 그 사회가 공정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말해주는 가장 투명한 거울”이라고 역설했다.
삶을 좀 먹는 고통
한국 로코테라피연구소 김미라 소장은 “인간은 자기초월적인 존재이기에 눈앞의 고통보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는 데 마음을 모아야 한다”며 “이는 의료진과 환자를 돌보는 가족도 마찬가지”라며 영적 돌봄의 중요성을 당부했다. 그러나 현실은 호스피스 필수 인력이 매우 부족해 이들 또한 심리적·물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실제 호스피스 내에 영적 돌봄 인력이 없는 기관도 많다.
암환자에 집중된 호스피스
동백성루카병원 윤수진 간호부장은 “입원형 호스피스는 말기 암환자가, 가정형 호스피스는 암을 비롯한 일부 질환 말기 환자만이 이용할 수 있다”며 “심지어 가정형 호스피스 기관 39개 중 절반도 안 되는 14개만이 비암성 질환 대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매우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또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의 경우, 재원 기간이 대개 60일 정도로 환자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호스피스 기관으로 전원을 요구받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생애 말기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병원을 전전해야 하는 현실이다.
언제 가야 하나
순천향대 간호학과 김형숙 교수는 “‘생애 말기’라는 용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단어의 불명확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말기’에 이른 것으로 간주되는 이가 너무 일찍 임종간호에 배치될 위험성이 있다”며 “반면 대부분의 환자와 가족이 완화의료 시기를 놓쳤던 경험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곡기를 끊는 것이 터부시 되는 우리나라에서 차마 불필요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지 못하는 의료인들의 소극적 태도가 임종 직전 환자에게는 오히려 삶을 존엄하게 마감할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