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제주도민들에게 항일의식을 불어넣은 아일랜드 출신 가톨릭 사제들이 2024년 1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주님 성탄 대축일인 12월 25일 ‘세계 속의 독립운동’을 주제로 2024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 38명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12월의 인물로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소속 패트릭 도슨(손 파트리치오, 1905~1989)ㆍ토마스 다니엘 라이언(나 토마스, 1907~1971)ㆍ어거스틴 스위니(서 아오스딩, 1909~1980) 신부를 선정했다. 이들은 1999년 정부가 독립유공자로서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추서한 인물들로, 항일 독립운동을 펼친 외국인 가톨릭 사제 가운데 유일하게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손 신부와 나 신부는 1932년 아일랜드에서 함께 공부한 뒤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한국에 파견됐다. 제주 중앙주교좌본당과 홍로본당(현 서귀포본당)에 각각 부임했으며, 서 신부는 1935년 한국에 왔다. 이들이 마주한 일제강점기 제주의 선교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세 사제는 사목하면서 항일 의식을 북돋웠다는 이유로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이동할 때마다 당국에 보고해야 했고, 신자들은 외국인 사제들과 관련한 지속적인 질문과 조사를 받았다. 1941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가세할 때 중립국 아일랜드 출신의 선교사들은 가택연금까지 당해야 했다.
당시 판결문을 보면, 손 신부는 1941년 자신의 집에 놀러 오는 제주 공립북국민학교 학생에게 “우리의 천주님은 천황보다 위대하다”며 항일 정신과 독립 의식, 신앙을 고취했다. 서 신부는 이 시기 손 신부와 같이 일본의 패망을 희망했다. 1939년에는 “일본군이 중국 소주를 점령할 때 많은 비전투요원을 살해하는 비인도적 행위를 자행했다”고 비판하는 등 항일 활동이 판결문에 적시돼 있다.
사제들은 모두 조선을 조국만큼 사랑했고, 독립을 염원하다 1942년 기소돼 투옥됐다. 서 신부는 일본군의 전황 보도가 허위라고 알리며, 패망을 주장하다 1942년 금고 2년을 선고받았고, 나 신부도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 일본은 패전할 것”이라고 한 이유 등으로 옥에 갇혔다. 손 신부는 중일전쟁 관련 허위보도를 비판하다 3년 반 동안 수감, 광복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일제가 성당을 폐쇄하고, 이들을 고문하는 중에도 벽안의 사제들은 조선의 독립을 함께 열망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는 “당시 선교 사제들은 20세기 초반 한국의 고통을 함께 겪고 나누며 한국 교회 성장에 기여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