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입법 공백 상태에 등장한 ‘임신 36주차 낙태 브이로그’ 속 태아가 낙태 당시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낙태 수술을 집도해 살인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70대 병원장이 “아이를 꺼냈을 때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한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홍순철 교수는 8월 28일 ‘우리 사회의 태아 생명보호, 어떻게 할 것인가’란 주제로 열린 국회 세미나에서 “원내 산부인과 데이터를 보면, 2011년부터 10년 넘게 임신 27주차 이후에 태어난 아기는 100 모체 밖에서 생존했다”며 “36주 된 태아 낙태는 논란의 여지 없이 살인”이라고 못 박았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처벌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후속 입법이 5년 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낙태 무법 지대’가 됐다. 36주차 태아 낙태 브이로그가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가 하면, 인터넷에는 낙태 수술에 대한 산부인과 광고와 수술 후기가 버젓이 떠다니고 있다.
홍 교수는 “헌재가 낙태 허용 주수의 ‘마지노선’으로 정한 22주차 태아도 12 이상 생존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태아는 9주차만 돼도 팔다리를 움직이는데, 이는 감각이 발달해 낙태 과정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세미나에서 잔인한 낙태 과정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재현될 때에는 방청석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날 세미나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국민의힘 조정훈·조배숙 의원이 마련했다. 발제자들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수정되는 순간부터 인간 생명’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헌재 결정으로 수정 순간부터 낙태를 금지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나마 태아를 최대한 살릴 방안을 모색, 태아의 심장박동이 확인되면 낙태를 금지하는 ‘심장박동법’을 제안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통상 태아는 6주차쯤이면 심장박동이 확인된다.
이화여대 건진의학과 장지영 교수는 정부를 향해 “성관계와 피임 방법에 초점이 맞춰진 공교육 내 성교육을 보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책임감 있는 관계를 전제로 한 ‘성품 성교육’을 도입하고, 처벌이 핵심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내용의 낙태죄 개정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낙태를 찬성하는 프로초이스 단체를 배제할 것”도 요구했다.
연취현(법률사무소Y) 변호사는 “일부 낙태 찬성 단체가 헌재의 결정을 근거로 ‘낙태는 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낙태죄 효력이 없어진 이후 2023년에도 한 남성이 교제하는 여성을 속여 낙태약을 먹인 것에 대해 형사 처벌한 판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장박동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조배숙 의원은 “판사 시절 가톨릭 신자인 동료를 통해 낙태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며 “국회의원으로서 36주차 태아까지 낙태되는 끔찍한 현실을 깊이 반성하고 시급히 세미나를 마련하게 됐다”고 전했다. 세미나에는 약 150명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