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우리 교구는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회복하는 자리에서 사목의 방향을 다시 세우고자 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관계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낼 때, 교회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살아 있는 복음의 공동체가 됩니다. 하느님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공감과 돌봄으로 관계를 회복할 때, 교회는 세상 안에서 복음의 향기를 다시 품게 됩니다.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특별 사목교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11항 역시 이 길을 분명히 제시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며, 보살피지 못하고, 함께 걸어가지 못하는 모습이 있다면 과감히 회개하고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우리 교구는 바로 이러한 가르침에 응답하며 복음적 관계의 회복, 곧 관계의 회심으로 새로워지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관계의 회심’은 하느님을 새롭게 만남으로써 삶의 모든 관계가 복음 안에서 다시 세워지는 변화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이 그 모범입니다. 바오로의 회심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질 때, 이웃과 공동체와의 관계 역시 새로워진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이며, 그 은총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방식으로 서로를 만나고,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을 드러내신 방식은 우리에게 복음적 관계의 기준을 제시하며, 그것은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다가감’, 둘째 ‘경청’, 셋째 ‘돌봄’입니다.
완벽한 계획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한 번 더 인사하고, 한 번 더 찾아가며, 한 번 더 위로하는 그 순간, 복음은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이것이 바로 관계의 회심의 실제이며, 교회를 새롭게 하는 가장 깊은 사목적 변화입니다.
우리 교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방식 그대로 다가가고, 경청하며, 돌보는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본당은 ‘만남의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본당은 신앙생활의 중심일 뿐 아니라, 누구나 와서 쉬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집이 되어야 합니다. 닫힌 공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초대하고 위로하는 열린 공동체로 거듭나야 합니다.
사제는 ‘동반자이자 위로자’로서의 사명을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신자들의 삶 속에 발을 담그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 속에 함께 머무는 사제, 하느님의 마음으로 다가가고 경청하며 위로하는 사제가 될 때, 교회는 목자의 향기를 다시 느끼게 될 것입니다.
평신도는 ‘서로의 벗’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성직자만의 공간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평신도의 공동체입니다. 서로의 짐을 나누고, 서로를 일으켜 세우며, 작은 일상 안에서 복음을 살아내는 벗들이 많아질 때, 교회는 한층 더 따뜻하고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안동교구장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