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들과 만남
처음에 낯설었지만 점차 친숙
함께하며 가족이 돼
2년 후 서울 만남 기약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복음 전파
캄보디아 서부, 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바탐방지목구(지목구장 엔리케 피가르도 ‘키케’ 알바르곤살레스 몬시뇰). 지목구청이 있는 바탐방은 캄보디아 제2의 도시로 최대 쌀 생산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앙코르 와트로 알려진 관광도시 시엠립도 이 지목구에 속해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아픔의 역사가 서린 곳이다. 20여 년간 지속된 내전 속에서 정부군·공산 진영을 막론하고 양민들이 태국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다량의 지뢰를 매설했다. 내전이 끝난 21세기에도 지뢰를 밟고 한쪽 발목이 사라진 이들이 수만 명에 달한다. 이로 인한 지체장애인과 고아 등 전쟁 상흔이 여전하다.
그럼에도 교회는 이곳에서 희망을 봤고 신앙적 기반을 토대로 사도를 길러내고 있다. 바탐방지목구장 키케 몬시뇰은 “건강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교육 기회를 확산해 학생들을 국가 지도자, 공동선을 지향하는 사도로 길러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1997년 캄보디아에 파견된 강인근(예수회) 신부는 “캄보디아 교회는 상처 입은 사람들 속에 따뜻한 복음을 전하고 위로의 빛을 밝히는 곳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 젊은이들은 가슴 한 켠에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신앙을 깊이 새기며 희망을 꿈꾸고 있다. 레악사(마리아 테레사, 15)양은 “저를 비롯해 많은 친구들이 가난한 가정, 다리를 잃은 삼촌 등 아픔을 안고 있지만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잊지 않고 있다”며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가 열리면 많은 우리 젊은이들이 꼭 참가해 신앙과 문화·역사를 체험하고 배운 뒤 캄보디아 교회를 발전시켜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본지는 한국 교회 사제·청년들과 6월 30일~7월 7일 현지 캄보디아 청소년·청년들과 만나 서울 WYD에 초대하기 위해 기획한 ‘찾아가는 WYD’에 동행했다. 캄퐁참지목구에 이어 아픔 속에도 희망이 자라는 바탐방지목구를 방문했다.
엔리케 알바르곤살레스 몬시뇰이 '찾아가는 WYD' 순례단과 인사하고 있다.
엔리케 알바르곤살레스 몬시뇰이 주일미사 성체분배 중 한 아이에게 안수를 주고 있다.
지뢰 희생자들을 위해 바탐방지목구에서 만든 휠체어
“지뢰, 아직도 나옵니다”
4일 바탐방지목구를 찾은 첫날 한국 순례단이 방문한 시엠립 소재 따옴성당(담당 제주교구 윤철우 신부) 외부 벽면은 크고 작은 구멍들이 가득했다. 리모델링을 했지만, 외부에서 이어진 구멍이 간혹 내부에서도 보였다. 킬링필드를 주도한 크메르 루주가 헬기 기총 소사를 한 흔적이다. 미사를 봉헌하던 사제·신자들은 학살됐다. 무자비했던 정권의 잔혹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현장이다.
순례 중 찾은 ‘킬링 케이브’(살인동굴)에는 해골이 탑처럼 쌓여있다. 크메르 루주가 죄 없는 양민을 살해한 뒤 시신을 던진 곳이다.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유골의 양은 더 많았다. 여전히 절벽 끝에는 그 수를 알 수 없을 만큼의 유골이 널브러져 있다. 35℃를 오가는 밖과 달리 서늘해 오싹함을 더했다.
둘째날 한국과 캄보디아 젊은이들이 방문한 바탐방 소재 ‘피스 갤러리’ 기념관에 전시된 작품들도 마찬가지. 전시품은 철제 벤치와 목발들이었는데, 내전 당시 쓰인 녹슨 총과 포의 부품들을 엮어 만들었다. 내전 중 전령으로 쓰인 비둘기를 기르던 곳을 전쟁 기념관으로 활용해 역사를 잊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전시품과 전쟁 사진·지도 등을 보던 학생들은 이따금 눈시울을 붉히거나 할아버지 세대의 아픔에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역사를 잊지 않고자 열심히 메모하고 디렉터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피스 갤러리 디렉터 라타나씨는 “나의 아버지도 지뢰 희생자”라며 “많은 비정부기구(NGO)들이 지뢰를 제거해 성과를 거뒀지만 아직도 지뢰 희생자가 나오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련에도 꽃은 핀다
젊은이들은 캄보디아에 희망을 심고 있다. 학생들은 다른 목적지로 이동할 때마다 묘목을 들고 다니며 이동지에 심었다. 나무 심기는 예수회 생태학 프로젝트 차원에서 기획됐다. 여전히 이곳에 만연한 환경 파괴보다 자연을 잘 가꿔나가겠다는 다짐을 새기는 것이다. 불교·바하이교 등에도 나무를 전달하며 타종교와 교류하며 이전 시대 아픔보다 현재의 종교화합과 평화를 배워나갔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환경에서 꿈을 키워가고 있다. 셋째 날 찾은 바탐방지목구가 운영하는 한나의집. 20여 년 전 작은 집 한 채에서 시작한 곳이 지금은 20여 명을 수용할 만큼 아이들로 빼곡했다. 부모를 잃거나 가난해 이곳에 맡겨진 아이들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불우한 배경이 무색하게 밝고 활발하며, 낯선 사람 품에 안겨 무릎과 허리춤을 잡고 떠날 줄 몰랐다. 전교 1등을 하는 친구도 있고 부모의 이혼으로 혼자 남겨졌지만 신앙의 힘으로 극복한 학생도 있었다.
한 살 때부터 이곳에서 자란 썸낭(16)양은 “많은 아이들과 섞여 지내며 어려움도 있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도 있지만 기도의 힘으로 이겨나가고 있다”면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하느님”이라고 말했다. 시우인(18)양은 “12살 때 부모님 이혼으로 혼자 남겨져 고아가 됐다. 처음엔 부모님을 원망하고 반항심만 생겼는데, 이곳에 적응해 나가면서 하느님 은총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김예은(젬마)씨가 픽업트럭에 올라타 캄보디아 청년들과 'V'자 포즈로 촬영하고 있다.
손님에서 친구, 친구에서 가족
“여러분은 우리의 특별한 손님입니다. 내일은 특별한 친구가 될 것이고, 다음날에는 특별한 가족이 돼 있을 겁니다.”
바탐방지목구 총대리 글렌 디아즈(예수회, 필리핀) 신부가 순례단을 맞이하며 한 말이다. ‘찾아가는 WYD’는 단순히 WYD를 소개하고 초대하기 위한 자리가 아닌, 우리 청년과 세계 젊은이들이 만나고, WYD를 향해 함께 일치하고 주님 안에 기쁨을 찾자는 의미에서 기획됐다. 한국과 캄보디아 젊은이들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하나가 됐다.
첫 만남 때만 해도 캄보디아 젊은이들은 멀리 한국에서 온 이들을 낯설어하고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여러 날을 함께하면서 껴안고 함께 웃고 울며 오랜 친구였던 것처럼 서로를 향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한국 청년들은 거리낌 없이 현지인 사제의 픽업 트럭 뒤에 올라타 포즈를 취한 채 캄보디아 청년들과 ‘셀카’를 찍고 함께 어울려 밤새도록 춤을 추는 시간도 보냈다. 한나의집 아이들은 오랜만에 삼촌, 이모를 만난듯 한국 청년들 무릎에 앉아 떠날 줄 몰랐다. 그야말로 두 나라, 두 교회가 한 가족이 됐다.
순례단 방문 중 지목구의 연례 체육대회인 ‘Bishop cup’(지목구장배 축구대회)도 열렸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방종우 신부는 지목구 사제단 일원으로 운동장에 발을 디뎠다. 그라운드 밖 젊은이들은 ‘Bishop’(주교)이나 ‘키케’(엔리케 알바르곤살레스 몬시뇰 애칭)를 연호하는가 하면, 손님 사제 ‘방종우’를 외쳤다. 이윽고 방 신부는 득점에 성공한 뒤 손흥민 선수의 ‘찰칵’ 포즈를 취하며 화답했다. 마침 지목구에 자원봉사를 온 호주·스페인 청년들도 그라운드 속에서 몸을 부딪치고 밖에서 열띤 응원을 펼치며 하나가 됐다.
5일 열린 ‘Bishop Cup’에서 방종우 신부가 ‘찰칵’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5일 열린 'Bishop Cup'에서 캄보디아 젊은이들이 '주교'를 연호하며 축구 경기에 환호하고 있다.
“WYD에 30명 보낼 것”
캄보디아에서 한 본당의 주일 헌금은 평균 2달러(약 2800원). 비록 작고 넉넉하지 않지만 사제와 평신도 모두 2027 서울 WYD 참가를 깊이 염원하며 열의를 불태우고 있다. 어떤 젊은이들은 기도로 그 기간을 함께할 것이라는 마음을 내비쳤다.
글렌 디아즈 신부는 “지목구 내에 위원회를 만들어 자금을 유치해 많게는 30명을 2027 서울 WYD에 보낼 것”이라며 “항공료·체류비 등을 마련하고자 2차 헌금을 추진하는 등 노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교사로 파견된 한국인 사제들도 지목구에 힘을 보태겠다고 뜻을 모은 상태다.
찾아가는 WYD 봉사자로 참여한 김아름씨와 캄보디아 현지 젊은이 레악사양이 서로 바라보며 대화하고 있다.
한국 순례단으로 함께 간 김예은(젬마)씨가 2023 리스본 WYD 참가 경험담을 들려주자, 현지 젊은이들의 눈이 번쩍였다. 생생한 체험담에 WYD를 체험하듯 깊이 빠져들었고, 2년 뒤 대회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 김아름(테레사 베네딕타)씨가 평신도로 시작한 한국 교회에 관해 설명하자, 질의응답 시간에 모든 질문이 순교와 평신도로 시작한 교회에 관한 질문이었을 만큼 한국 교회에 관심이 컸다.
썸낭양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년 전 2027년 WYD 개최지로 서울을 선정했을 때부터 한국에 가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다”고 했다. 시우인양도 “이번에 한국에서 순례단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다른 아시아 교회와 소통할 수 있다는 마음에 무척 흥분됐다”며 “한국 청년들과 만나 기뻤고 서울 WYD에 참가한다면 그 경험을 캄보디아 신앙 공동체에 최선을 다해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