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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파파!” 에펠탑을 뒤흔든 50만의 함성, 그날 파리는 뜨거웠다

[응답하라 WYD] 1997 파리 세계청년대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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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8월 21일 파리 세계청년대회(WYD) 교황 환영행사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등장하자 전 세계 젊은이들이 환호하고 있다. OSV


세속주의 속 순례자 100만여 명 진정한 행복과 가치 있는 삶 고민

“두려워하지 마라” 교황 메시지에 많은 청년들 “인생이 바뀌었다” 고백

홈스테이 제공했던 청년 드뷔엔 “환대·친교 의미 깨닫고 사제의 길로”



“교황님, 만세!” 1997년 8월 21일 오후, 프랑스 에펠탑 주변에서 일제히 환호가 터졌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태운 전용 차량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곳에 모인 수십만 명의 젊은이는 이른 아침부터 파리의 여름 바람 속에 노래하고 깃발을 흔들며 교황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황이 나타나자 북소리는 더 커졌고, 젊은이들의 노래는 1㎞에 달하는 광대한 선형 공원을 가득 채웠다. 당시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현장에 모인 젊은이만 약 50만 명. 이들의 함성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던 1997 파리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WYD) 교황 환영행사였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2025년 12월 4일. 일찍 해가 저문 겨울, 파리외방전교회 정원에는 에펠탑이 뿜어내는 한줄기 빛이 드리워졌다. 그 시절 젊은이들의 열기는 온데간데없이, 차가운 공기 속에 정원은 적막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WYD에 대한 기억마저 빛바랜 것은 아닐까 싶던 그때, 횃불이 하나둘씩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길 사이로는 순교자를 현양하는 노래가 불어로 퍼져 나왔다. 어둠을 밝히는 횃불을 저마다 손에 든 이들은 모두 순교자들을 기리고자 자발적으로 모인 프랑스 젊은이들이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향한 여정에서 이전 WYD 개최지를 찾아 그 열매를 조명하는 cpbc와 2027 서울 WYD 지역조직위원회 공동기획 ‘응답하라 WYD’. 그 첫 번째 이야기 ‘1997 파리 WYD편’에서는 맺고 지기를 반복하며 신앙의 유산을 이어가는 ‘WYD의 파리지앵들’을 만났다.

 
프랑스 젊은이들로 구성된 '선교를 위한 남자들'이 2025년 12월 4일 파리외방전교회 정원에서 횃불을 들고 순교자를 현양하고 있다.


횃불 아래 모인 젊은이들

파리외방전교회 정원에 횃불을 들고 모인 청년들은 꼿꼿이 두 줄로 서서 아직 빛이 닿지 않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지의 땅으로 파견돼 신앙의 불을 밝힌 자국 전교회 출신 선교사들을 떠올리며 경건히 현양의 밤을 마련한 것이다. 사제·신학생·평신도 20여 명으로 이뤄진 이들은 스스로를 ‘선교를 위한 남자들’이라 불렀다. 순교자 현양비에 차례로 입을 맞추고, 성유물 앞에 무릎 꿇은 채 묵념했다. 성유물 중에는 한국인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신부의 편지도 있었다.

‘선교를 위한 남자들’은 지난해 가을부터 매달 한 번씩 모여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있다. 세속의 유혹에도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고 한 주님 말씀을 따라 신앙의 불을 지피기 위해서다. 이들 대부분은 “우리는 과거 우리 교회에서 WYD가 치러진 역사를 잘 대물림받았고, 2023 리스본 WYD에도 대부분 참가했다”며 “대회가 뿜어냈던 젊은 신앙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모임을 만든 호돌프 롱보(28) 신학생은 “우리의 작은 기도로 그리스도의 불을 세상에 지를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1997년 파리에서 심어진 씨앗은 서로 다른 가치와 긴장이 공존하는 오늘날에도 열매를 맺고 있었다.

 
프랑스 젊은이들로 구성된 '선교를 위한 남자들'이 2025년 12월 4일 파리외방전교회의 '순교자의 방'에서 순교자들의 여정을 그린 그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예를 다하고 있다.


세속주의 프랑스, 청년들은 어디에 있었나

자유와 실용, 물질이 삶의 기준이 된 세속의 흐름은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 대륙의 심장 프랑스 역시 30년 전 자유화의 물결 속에 종교의 자리는 좁아지고 있었다. 1980년대 말 촉발된 히잡 논쟁은 공공장소에서 종교적 표현이 어디까지 허용되느냐를 둘러싸고 사회 갈등으로 번졌고, 높은 실업률과 이민자를 배척하는 분위기 속에 폭동 또한 잦았다. 1990년대 후반 영국 가디언은 폭력의 온상이 된 프랑스의 교외지역 방리유를 조명하며 “세속주의는 중립을 표방하지만, 이민자 청년들은 차별을 경험한다”고 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했죠. 사람들은 훨씬 살기 편해진 환경에 안주하며, 더 즐거운 요소들만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톨릭교회가 제시한 가르침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했죠.”

파리대교구 클리냥쿠르 성모본당 주임 스테판 뒤퇴르트르 신부는 1997 파리 WYD가 열린 배경을 설명하면서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종교를 떠났고, 교회는 활력을 잃었다”며 “사제의 20 이상이 옷을 벗었다고 할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런 큰 도전 앞에서 프랑스 교회는 ‘어떻게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1997 파리 세계청년대회(WYD)에서 한 청년이 에펠탑 앞에서 십자가를 들고 있다. OSV


“너희는 혼자가 아니야”

1990년대 파리대교구장이었던 장 마리 뤼스티제 추기경은 파리에서 WYD를 개최하겠다는 구상을 품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만났다. “파리에서 WYD를 열고 싶습니다!” 이 만남은 곧 파리 WYD의 출발점이 됐다. 뤼스티제 추기경은 이후 파리 WYD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는 자신의 사목표어처럼 뤼스티제 추기경은 젊은이들을 향한 믿음을 품고 있었다. 그들 마음에 심은 씨앗은 언젠가 꼭 열매를 맺을 것이란 확신이었다.

프랑스 가톨릭방송사 KTO의 필리핀 드 생 피에르 최고경영자(CEO)는 두 사람의 만남을 이렇게 돌아봤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성공할까’하는 고민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뤼스티제 추기경님은 그들에게 성 요한 바오로 2세와 같이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란 사실을 전하고 싶어 하셨죠.” 그러면서 “추기경님은 좋은 차, 비싼 집 같은 물질로는 결코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 진정한 행복은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데서 온다는 진리를 함께 발견하도록 격려하고 싶어 하셨다”고 덧붙였다. 파리 WYD는 그렇게 단순한 축제의 장이 아니라, 지구촌 젊은이들의 진정한 행복과 가치 있는 삶을 위해 교회가 고민하고 개최한 자리였다.

파리 WYD 참가를 계기로 사제가 된 파리대교구 노트르담 도퇴유본당 주임 앙투안 드뷔엔 신부도 “당시 이분화된 프랑스 사회에서 진보는 전통을 외면했고, 보수는 그에 맞서는 일이 반복됐다”며 “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파리에 도착한 순간, 그분을 함께 맞이하며 화합하고자 노력한 우리는 스스로를 가두던 진보와 보수의 틀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졌다”고 회상했다.

 
1997년 8월 23일 파리 세계청년대회(WYD)에 참여한 전 세계 젊은이가 센 강 다리 위에서 파리를 둘러싼 37km 길이의 인간 사슬 '형제애의 사슬'을 만들고 있다. OSV


파리 WYD는 일주일간 교구대회를 거쳐 1997년 8월 19~24일 열렸다. 최초로 교구대회와 홈스테이를 도입한 파리 WYD는 운영 방식에서도 새로운 전환점이 된 대회다. 프랑스 교회 관계자들은 “교구대회와 홈스테이를 도입한 덕에 100만 명 넘는 순례자를 맞이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현지 다른 사람들은 “당시 예상보다 많은 참가자가 모집되면서 교구대회와 홈스테이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1997년 8월 23일 토요 밤샘기도 중 거행된 세례식은 이후 WYD에서 세례성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통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WYD의 기본 구조 역시 이때 정립됐다. 교구대회·본대회 개막미사·주교 교리교육·교황 환영행사·밤샘기도·파견미사까지 현재의 WYD 공식 일정이 자리매김했다.

옛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등 공산주의 체제를 겪은 젊은이들이 공식적으로 처음 참여한 대회라는 점에서도 상징적이었다. 대회 중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가 여성으로서 세 번째 교회학자로 선포됐고, 이후 설립된 가톨릭방송사 KTO는 오늘날까지 ‘파리 WYD의 유산’으로 불린다.

 
전 세계 160개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강론을 듣기 위해 1997년 8월 21일 파리 세계청년대회(WYD) 교황 환영행사가 열린 에펠탑 인근 마르스 광장을 가득 채웠다. OSV


삶을 바꾼 한마디

“두려워하지 마라.” 파리 WYD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함께했던 젊은이들은 교황이 전한 단순하면서도 강한 메시지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목소리로 전했다. 교황은 파리 WYD 개최 한 해 전인 1996년 8월 15일 ‘제12차 세계 젊은이의 날’ 메시지에서 “두려움의 장벽을 물리치고 예수님을 따를 것”을 수차례 당부했다. 공식 주제성구는 아니었지만, 교황은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그분이 주시는 새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자주 독려했다. 젊은이들은 이 메시지를 대회 내내 새겼다.

파리 WYD 현장에선 “두려워하지 마라”는 메시지가 구호처럼 사용됐다. 젊은이들은 이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교구대회 중 홈스테이 제공으로 전 세계 참가자들을 맞이하면서 환대와 친교의 의미를 깨달은 드뷔엔 신부도 “이 문구에 용기를 얻었고, 사제가 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23살 열심한 평신도였던 드뷔엔 신부는 파리 WYD 본대회 개막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기, 본당 신부를 찾았다가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자네 집에서 홈스테이가 가능하겠나?” 막 학업을 마치고 회계 관련 직무로 첫 일자리를 얻은 참이었다. 혼자 살던 아파트는 넓지 않았지만 “두 명 정도라면 가능할 것 같다”고 답했다. 그 만남도 잊은 채 출근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아침 ‘똑똑’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젊은 순례자 두 명이 서 있었다.

 
파리대교구 노트르담 도퇴유본당 주임 앙투안 드뷔엔 신부가 2025년 12월 2일 성당에서 파리 WYD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 있다.


홈스테이가 선사한 은총

난생처음 자신의 집을 WYD 홈스테이 가정으로 내어준 그는 그들과 지내는 동안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어떻게 밥을 바닥에서 먹어?” “어머, 프랑스 사람들은 집에서도 신발을 신네!” 등 같은 신앙인이지만, 서로 다른 문화에서 나고 자란 차이를 WYD를 통해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드뷔엔 신부는 “일주일간 제가 아침에 일하러 나가면서 그들에게 집 열쇠를 주고, 저녁에는 저녁 식사를 해줬다”고 했다.

드뷔엔 신부의 아파트는 중앙 정원을 중심으로 여러 세대가 둘러 사는 구조였다. 다른 집에 홈스테이하는 순례자들은 그 정원에서 만나 ‘홈스테이 후기’도 나눴다. 좋은 후기를 들은 집엔 순례자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평소 이웃 간 대화가 많지 않았던 그의 아파트 단지 풍경이 달라졌다. 드뷔엔 신부는 “이웃에게 마음이 활짝 열리는 시간이었다”며 “현재 또래인 40~50대 중반의 많은 사제가 WYD 때 비슷한 경험을 하고 사제의 길을 걸었다”고 밝혔다.

이는 사제가 된 후에도 본당 신자들을 환대하고 친교를 나누는 사목에 밑거름이 됐다. 드뷔엔 신부는 최근 자신의 본당에 한국인 신자가 있는 것을 알고, 한국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신자들이 지닌 다양한 문화와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드뷔엔 신부는 한국 교회 신자들에게도 격려를 전했다. “‘홈스테이’하면 보통 부담을 느끼죠. 잘 환대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는 거예요. 환대는 가진 것보다 더 내어주고자 하는 무언의 약속이 생기는 일이지만,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환대할 수 있습니다. 먼 길을 순례하며 지친 이들을 맞이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일입니다. 그런 만남과 환대로 저도 은총을 경험하고, 사제도 됐잖아요.”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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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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