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곶순교성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 1366번길 35(갑곳리)
안녕하세요 성지순례하는 남자 이베드로입니다.
오늘은 강화도 성지순례2부로 갑곶순교성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면서 육로에 대한 검문이 강화되었습니다.
천주교 유입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선교사의 유입을 위해 해로를 개척하게 됩니다.
1845년 5월 1일 김대건신부는 페레올 주교의 명으로 선교사를 비밀입국 시키는 해로를 개척하기 위해
서울 마포를 떠나 강화도 갑곶까지 오게 됩니다.
이후 갑곶으로 1856년 베르뇌주교, 프티 니꼴라, 푸르티에 신부가 입국하고
1857년 페롱 신부등이 입국하는 비밀통로가 됩니다.
이 곳 갑곶에서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효수형을 당한곳인데요.
1866년 병인박해 때 강화도에서는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습니다.
1866년 7월 12일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 가 대동강까지 올라와서 평양에서 통상을 요구하였고 거절당하자 평양군민들이게 총과 대포를 쏘며 행패를 부렸는데요.
평양군민들은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우고 선원들을 처형 하게 됩니다.
이 사건이 제너럴 셔먼호 사건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를 빌미로 1871년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공격하는 신미양요를 일으킵니다.
흥선대원군은 이를 빌미로 천주교를 더욱 박해하였고
이로 인해 갑곶나루터에는 천주교 신자들의 목을 베어 말뚝에 달아매는 효수터가 되었습니다.
이때 미국함대를 왕래한 박상손, 우윤집, 최순복 등이 첫번째로 이곳 갑곶진두에서 효수되었습니다.
1866년 10월14일에는 프랑스 함대가 프랑스 선교사들 처형을 빌미로 강화도에 침입하는 병인양요가 발발하게되는데요.
신미양요, 병인양요를 겪으면서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는 더욱 심해지게 됩니다.
인천교구는 문헌상의 갑곶진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서 지금의 갑곶성지를 조성했고 순교자들의 행적증언자이며 인천교구 역사에서 빠질수 없는 박순집 베드로의 유해를 성지에 안장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