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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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성월 기획 - 현대의 순교영성] 순교영성의 현대화를 위한 노력

퇴색된 순교영성 … 현대적 해석으로 되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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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영성의 현대화 필요성 제기

한국천주교회의 대표적 영성을 들라면 순교영성을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순교영성이 무엇이냐고 되물을 때 제대로 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 지는 의문이다.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듯 한국교회는 신앙 선조들의 순교영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희생을 밑거름으로 오늘을 일궈냈다. 그러나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풍요와 안정 속에서 그 정신이 퇴색되어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기도 하다.

보편교회 안에서 돋보이던 한국교회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예전으로의 회복은 고사하고 현상 유지마저 장담하기 힘든 서구교회의 상황이 이 땅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의무와 책임만 있고 기쁨과 열정이 고갈돼가는 교회에서 신자들은 별다른 매력을 찾기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정체상태를 크게 면치 못하고 있는 교세 증가율과 총인구의 10가 넘는 신자 수로도 복음화를 통한 세상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버겁기만 한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순교자들이 피로써 지켜낸 신앙에서 미련없이 발길을 돌리는 신자들의 모습은 오늘날 교회가 처한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교회 내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실의 주된 원인을 순교영성의 쇠퇴에서 찾는다.

청주교구 양업교회사연구소 차기진(루카) 소장은 “무려 8년 동안 하느님의 종 125위 시복시성 예비심사 작업 끝에 지난 2009년 6월 관련 문서 일체를 교황청 시성성에 접수시켰지만 교회 저변에서 시복시성을 위한 열기를 체감하기는 힘들다”면서 “이는 신자들이 신앙 선조들의 순교와 오늘날 자신의 신앙을 연결시키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크다”고 진단한다.

실제 각 교구나 단체 차원에서 이뤄지는 순교자 현양대회 같은 외형적 행사나 도보성지순례와 같은 단편적인 행사로는 순교정신을 내면화해서 영성으로 발전시켜 나가기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 하느님의 종 125위 시복시성기원 도보성지순례 모습. 전국적으로 다양한 도보순례가 펼쳐지고 있지만, 순교영성을 진정으로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외형적·일회성 행사를 벌이기 보다 신앙선조들의 삶과 행적을 알아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교회가 야심차게 추진해 온 125위 시복시성 청원운동도 신자들의 피부에 와 닿는 신앙운동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순교영성의 재정립을 위한 노력이 절실해지는 까닭이다.

전문가들은 순교영성을 새롭게 가다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순교영성의 현대적 재해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오늘날의 순교영성

순교영성은 신앙 선조들이 삶으로 보여준 대로 하느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며 순명이다. 순교의 피는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탄생시키기에 그리스도인의 씨앗(테르툴리아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응답과 순명의 자세가 교회 안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오히려 세속주의에 깊이 빠져들면서 자신의 잣대로 하느님을 재단하려는 움직임마저 번지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개인주의, 물질주의, 경제제일주의 등 비그리스도적인 사상들이 적잖은 흐름을 형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재)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 조광(이냐시오·67) 교수는 “순교영성은 하느님 눈으로 이 세상과 사물, 인간을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면서 “순교영성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새롭게 출발하려는 자세를 회복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조 교수는 “순교영성의 더 본질적 측면은 순교자들이 무엇 때문에, 어떻게 하다가 순교를 했는지 하는 점”이라면서 “단 한 분의 순교자라도 체화시킬 때, 자기화시킬 수 있을 때 그리스도교적인 구원을 제대로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예전처럼 생명을 바쳐가면서까지 하느님을 증거하는 시대를 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때문에 더더욱 세속화된 세상에서 신앙의 참 진리를 수호해야 하는 막중한 소명과 책임을 부여받는다.

세상 속에서 순교영성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은 생각과 말과 행동의 가치관을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두는 것(콜로 3,2)을 의미한다. 이는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과 시류에 맞는 흐름을 거슬러 하느님 법에 따라 사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순교영성의 정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잘 드러난다. 예수님 또한 순교자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일생은 철저한 이타적 사랑이라는 점에서 갈수록 퇴색되고 있는 순교영성의 한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에게 박해와 순교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옛날이야기로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신앙 선조들의 오롯한 믿음에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자신이 지향해야 할 삶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신앙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을 이해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여기에서 순교영성의 현대화를 위한 노력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차기진 소장은 “순교영성의 현대화는 순교자현양대회나 성지순례 등을 통한 신앙 선조들과의 ‘만남의 단계’에서 시작하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동행의 단계’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신앙 선조들이 지녔던 정신을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동행의 단계’를 거쳐 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접목의 단계’로까지 나아갈 때 순교영성의 현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순교영성 회복

오늘날 한국교회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순교자 현양과 시복시성운동 등 다양한 모색들도 결국은 모두 순교영성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순교영성을 회복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순교영성의 현대화다. 순교자들의 순교 행적 뒤안길에 묻혀있는 영성을 캐내 현대 신앙인들에게 어떻게 전하고 접목시킬지 고민해야 한다.

차기진 소장은 “순교영성의 현대화를 위해서는 순교 사실만 강조해서는 효과가 없다”면서 “신앙 선조들의 생애에 담겨 있는 신앙의 용기, 하느님께 대한 헌신, 이웃에 대한 사랑 등 믿음의 보화를 찾아내 오늘에 되살려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신앙 선조들이 삶으로 보여준 순교영성을 신자들의 삶 속에서 체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신앙 선조들의 삶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물론 125위 시복시성 대상자들에 대한 관심조차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본당이나 소공동체·사도직단체 등에서 시복시성 기도문을 공적으로 바치는 일은 드물고, 신자들의 기도운동 참여도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평신도들이 중심이 된 기도운동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교구 차원의 기도회·도보순례·순교자현양대회·심포지엄 등도 단발성 행사로



가톨릭신문  201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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