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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기획

성직자 영입 운동 앞장·평신도 사도직의 선구자/ 정하상 성인의 생애와 교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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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한국교회의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와 정하상 성인을 함께 기억하는 것은 정하상 성인이 평신도를 대표하는 성인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다. 성직자 영입운동에 앞장서서 평신도 사도직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신앙선조, 그는 오늘날까지도 평신도 신앙의 모범으로서 신자들의 표상이 되고 있다. 신앙의 지도자로서 정하상 성인의 생애와 교회 활동을 돌아보고, 현재를 사는 우리가 지녀야 할 책임과 자세를 살펴본다.

■ 성직자 영입 운동


한국교회 초기 성직자 영입 운동의 중심이 됐던 정하상 성인. 그는 신유박해로 국내에서 활동하던 주문모 신부를 잃게 된 조선 천주교회의 재건을 위해 성직자가 필요하다고 절감했다. 그는 성직자 파견을 직접 호소하고자 1816년 이후 9차례나 북경을 왕래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직자 영입이 불가능하자 그는 유진길, 조신철 등 동료들과 함께 교황청에 청원문을 보내기에 이른다. 이들의 서한은 1827년 로마 교황청에 접수됐고, 이후 조선대목구 설정과 함께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브뤼기에르 주교가 파견됐다. 정하상 성인은 유방제, 모방, 샤스탕 신부와 제2대 교구장 앵베르 주교의 영입에도 적극 나섰다.

■ 신자들의 지도자

수덕(修德)과 신망(信望)이 두터웠던 정하상 성인은 당시 신자들의 대표로 추대됐다. ‘시성조서’에 나오는 이 베드로는 정하상 성인에 대해 “참으로 덕성스럽고 굳세었으며, 충직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교리에 무척 밝고 놀라울 정도로 열심이었기에, 이러한 재능과 덕으로 신자들은 그를 진정한 장상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전국을 누비며 신자들을 만났다. 손골성지 전담 윤민구 신부는 “성직자 없이 오랜 시간 스스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나태해지기도 하는데, 정하상 성인은 이러한 이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 성인 역시 자신이 회개한 동기가 정하상 성인의 권고 때문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 신학생 선발에 앞장서다

조선에 도착한 모방 신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명의 신학생을 선발해 마카오로 보냈다. 교회의 앞날을 위한 신학생 선발 과정에서도 신자들의 대표로서 정하상 성인이 주도적 역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836년 입국한 모방 신부가 생면부지 땅에서 같은 해 신학생(최양업, 최방제, 김대건)을 선발하기에는 무리가 따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은 김제준 성인의 이야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심문과정에서 “정하상이 찾아와 ‘만약 네 아들을 서양에 보내 신학을 배우게 한다면 다시 본국에 돌아왔을 때는 모방 신부와 같이 훌륭한 신부가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앵베르 주교는 정하상을 가리켜 “주께서는 우선 우리의 북경 보행군으로 나이 42세에 아직 독신이며 우리들을 모두 조선에 인도하여들인 신자(정하상)를 찾아내는 은혜를 주셨다. 나는 3년 안으로 신품을 줄 희망을 품었다”고 말했다.

■ 상재상서(上宰相書)

1839년, 정하상 성인은 순교하기 전 붓을 들어 자신을 박해하는 조정 대신에게 성교의 도리를 밝힌다. 천주교 교리를 밝히고, 천주교에 대한 박해의 비합리성과 부당성을 지적하고, 천주교를 변호하는 호교론적 색채가 짙은 상재상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신앙인으로서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지목하고 있다.

상재상서는 순교를 눈앞에 둔 당시에도 길지 않은 호흡으로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정하상 성인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하상 성인은 우리나라 조정이 천주교의 이치가 어떤지는 알아보지 않고 무조건 옳지 못한 가르침이라고 몰아붙이는데 원통함을 표시한다. 더불어 천주교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본격적으로 알리고 나선다.

그는 ‘천지가 저절로 생겨났다면 해와 달과 별이 어떻게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떻게 그 바뀌는 순서가 잘못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는 하느님이 계심을 ‘사람들의 양심’과 성경으로 증거하기도 한다.

“신주(神主)라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혈육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또 낳아서 길러준 부모님의 노고와도 관련이 없습니다.(중략) 그런데 목수가 만들어서 분을 칠하고 먹을 찍은 신주를 보고 참된 아버지요 어머니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양심 또한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양반에게 죄를 짓더라도 성교회에 죄를 짓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렇듯 평신도의 귀감이 되는 정하상 성인을 많은 사람들이 기리고 있다. 수원가톨릭대학교와 많은 본당이 주보성인을 정하상 성인으로 하고 있으며, 기관단체들 또한 그의 이름을 빌려 그의 정신을 기억하고 있다.


 
▲ 정하상 성인이 1839년 작성한 상재상서.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
이우현 기자 (helena@catimes.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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