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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의 달 특별기고] 내 생애 최고의 선물, 호두

부산교구 석판홍 신부-에밀 보드뱅 신부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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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외방전교회 에밀 보드뱅(E. Beaudevin) 신부는 1926년부터 13년간 경북 울주군 언양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성당을 짓고 가난한 이들을 보살폈다.
언양본당은 성당 정원에 보드뱅 신부 흉상을 세워 그의 선교사적 사랑을 기리고 있다.
 
 
  영명축일을 맞은 `아버지 신부님`(신학교 추천 신부님)이신 김성도 신부님을 찾아뵈었는데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는,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옛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셨다.

 부산교구 언양성당은 1927년에 설립되었고, 1932년에 준공된 유서 깊은 성당이다. 당시 초대신부로 발령받아 성전까지 지어 봉헌하신 분이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에밀 보드뱅(한국명 정도평) 신부님이시다. 김성도 신부님께서 해주신 이야기는 바로 이 에밀 보드뱅 신부님과의 사연이었다.

#프랑스로 배달된 호두 100개

 김성도 신부님은 1972년부터 1976년까지 언양본당 제14대 주임신부로 사목하셨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김 신부님이 사목하던 시절에 성당 마당에 호두나무가 꽤 많았다고 한다. 가을이 되면 호두를 따다가 교우들이랑 나눠 먹곤 하였는데, 문득 `그분 덕분에 이렇게 맛있는 호두를 나눠 먹고 있는데…`하며 호두나무를 처음 심은 분이 생각나셨다고 한다.

 호두나무를 처음 심은 분은 언양본당 초대 주임신부님이셨던 에밀 보드뱅 신부님이시다. 1927년부터 1939년까지 10년 넘게, 남의 나라인 한국에 파견되어 언양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하시며 사랑을 쏟으신 분이다.

 그즈음 마침 안달원 신부님을 비롯한 몇몇 신부님들께서 유럽 성지순례를 가신다는 소식을 접한 김 신부님께서는 안 신부님께 간곡하고도 기가 막힌 부탁을 하나 하셨다고 한다. 그것은 보드뱅 신부님께 성당 마당에서 딴 호두를 직접 전해 드리는 것인데, 안 신부님께 그 배달을 부탁하신 것이다. 평소 호두를 먹을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들어 `보드뱅 신부님께 보내드리면 좋을 텐데`하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김 신부님은 호두를 100개 정도 따서 상자에 담아 안 신부님께 전하셨고, 귀찮을 법도 한데 안 신부님께서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셨다고 한다. 상자 속에는 김 신부님이 보드뱅 신부님께 전하시는 편지도 함께 있었는데, "보드뱅 신부님께서 언양성당에 심으신 호두나무가 잘 자라 훌륭한 열매를 맺어 많은 사람이 맛있게 잘 먹고 있고, 신부님 생각이 나서 고마운 마음으로 이렇게 보내드린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안 신부님께서 그 호두상자를 들고 프랑스 파리까지 가셔서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를 방문하셨다. 하지만 그곳에 계시리라 여겼던 보드뱅 신부님은 계시지 않았다. 안 신부님은 수소문 끝에 어느 작은 시골까지 찾아가 보드뱅 신부님을 만나 호두상자를 전해 드렸다고 한다.

 뜻밖에 멀리 한국에서 배달된 탐스러운 호두를 받아든 보드뱅 신부님은 매우 기뻐하시며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40여 년 전, 멀리 이국땅에 파견되어 당신이 직접 심은 호두나무가 자라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맺었고, 바로 그 열매를 당신이 선물로 받았으니 얼마나 감개무량하셨겠는가? 그분께는 그 호두가 단순한 열매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로 여겨졌을 것이다.

#서양 선교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

 보드뱅 신부님은 당신의 젊은 시절, 한국에서의 시간을 회상하며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드러내시고, 특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후임 한국인 신부가 당신을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보내는 호두라는 편지를 읽으시고 더욱 감격해 하셨다고 한다.

 보드뱅 신부님은 그 사랑을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 한 달에 한 개씩만 먹겠다며 김 신부님께 감사의 답장을 한글로 직접 써서 안 신부님 편으로 보내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듬해 보드뱅 신부님께서 선종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셨다.

 호두를 통해 전해진 사랑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진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고국을 떠나 멀리 한국까지 파견되어 온 선교사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노고에 고마운 마음으로 이 세상 그 어떤 선물보다도 값진 선물을 전하신 원로 선배 신부님들의 따스한 손길이 이 가을, 참으로 아름답고도 긴 여운을 남긴다.

석판홍 신부(부산교구 전산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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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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