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배웅씨가 전국 성지순례를 마친 후 성지순례 출발지인 안산 대학동성당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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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밑에서 홀로 고아처럼 자랐다. 항상 배고팠던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 사는 아주머니들이 불쌍하다면서 감자며 고구마며 먹을 것을 챙겨줬다.
70살이 다 되고 보니 고마움과 그리움이 사무쳤다. 기도보다 더 큰 보은이 있을까. 신앙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교자들도 만나고 싶었다. 전국 111개 성지를 모두 순례하며, 가는 성지에서 세상을 떠난 은인들을 위해 두 손을 모았다. 경기도 안산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배웅(야고보, 68, 수원교구 대학동본당)씨 이야기다.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은 것 같아 마음이 평온합니다. 마침 올해는 제가 가톨릭에 입교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여러모로 뜻깊은 순례가 됐습니다."
배씨는 자신의 승용차로 이동하며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잠은 침상으로 개조한 운전석 옆자리에서 잤고, 밥은 부탄가스레인지와 코펠을 이용해 직접 해먹었다. 바다 건너 제주도는 배에 차를 싣고 다녀왔다. 번거로운 대중교통이 아닌 승용차로 움직이면서 먹고 자는 데 시간을 안 뺏기니, 예상했던 것보다 이른 40여 일 만에 전국 성지순례를 마칠 수 있었다. 주교회의 성지순례사목소위원회가 순례 완주자에게 주는 축복장도 받았다.
배씨는 "평생 잊지 못할 고마운 분들이 한둘이 아니다"면서 "한 분 한 분 이름을 적은 명단을 가지고 다니며 세상을 떠난 그분들의 안식을 빌었다"고 말했다.
"어려서 배앓이를 할 때면 바늘로 손톱을 따주고 `내 손이 약손이다`하며 배를 쓰다듬어주신 분, 돈이 없는 집안 형편을 보시고 깻묵을 수업료 대신 받아주신 선생님, 동네잔치가 열리면 귀한 음식을 몰래 치마 속에 감춰와 주신 분, 군에서 휴가를 나오면 귀한 달걀찜 반찬으로 격려해주신 친구 어머니…. 나이를 먹을수록 돌아가신 그분들 은공이 새록새록 새로워지더군요."
성지에서 만나는 순교자들의 행적은 그의 신앙을 하나부터 열까지 되돌아보게 했다. 배씨는 "성지와 관련된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되새기며 나약하기만 한 나의 신앙을 반성했다"면서 "성지순례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하느님의 진정한 종이 된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번 성지순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입니다. 은인들 은혜를 기도로 갚고, 제 신앙까지 새롭게 했으니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죠. 이 모든 것을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