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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남편 잃은 후 아들 딸도
상실감에 방황하고 우울증 겪어
피정 다니며 예수님께 희망 얻어

▲ 김시영시가 하늘나라로 떠난 남편과 두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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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속담이 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보다 자식을 잃었을 때의 아픔이 더 크다는 뜻이다.
위령성월(11월)을 맞아 남편과 두 자녀 등 가족 셋을 잃었지만 신앙심 하나로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행복한 삶을 사는 김시영(포티나, 74, 서울 상계2동본당)씨를 만났다.
김씨는 "그때는 정말 살고 싶지 않았다"고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하느님 원망을 참 많이 했지요. 내가 무슨 죄가 있기에 하면서요. 남편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우리 아들딸마저 데려가셨으니까요."
그는 지난해 5월 지병을 앓던 큰딸(고혜순 마리아, 당시 52살)을 잃었다. 앞서 12년 전에는 외아들(고기윤 가밀로, 당시 33살)을, 1987년에는 남편(고재환 요한, 당시 53살)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25년 전부터 그에게 시작된 죽음과 이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악연이었다.
그는 평소 레지오 마리애 단장과 구역ㆍ반장, 선종봉사회장 등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1994년 둘째 딸이 수녀회(한국외방선교수녀회)에 입회한 것 말고는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삶이었다. 남편을 잃기 전까지만 해도 1남 3녀를 둔 다복한 집안이었다.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남몰래 지역 내 어려운 청소년들을 도왔다. 시간이 흘러 도움을 받았던 한 명이 장성해 취직하자 그를 위해 잔치를 열었는데, 그곳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아들도 2000년 교통사고로 그의 곁을 떠났다. 아들은 당시 신혼이었고, 손자가 태어난 지 8개월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김씨는 "아들을 잃었을 때는 삶 전부를 잃은 듯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성당에 나가는 것과 봉사하는 것, 기도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리면 `아들 전화 아닌가`하며 깜짝깜짝 놀랐다. 우울증도 생겼다. 혼자 창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어느덧 시곗바늘은 1시간 뒤를 가리키는 날이 많았다.
"아들을 보내고 몇 년쯤 지나선가,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이대로 살면 저마저 죽을 것 같더라고요. 하늘나라에 있는 남편과 자식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았어요. 신앙인에겐 죽음이 완전한 끝이 아니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떠올리며 다시 살아야겠다고 하느님께 매달렸어요."
그는 그 뒤로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찾아 피정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 주님은 그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하고 묻는 것 같았다.
그는 생활습관도 바꿨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본당 노인대학에도 나가고, 가만히 있으면 우울해질까봐 허드렛일이나마 직장생활도 시작했다. 그렇게 지내자 죽음의 고통이 물러나고 삶의 희망과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지난해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큰딸마저 잃었을 때는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전처럼 신앙을 저버리는 일은 없었다. 요즘에는 성경필사를 하면서 주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제는 그의 얼굴에서 행복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성당에만 오면 기분이 좋아요. 하느님은 제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 들여다보고 계시잖아요. 이제는 하느님께 감사드려요. 노인을 잘 대해주는 좋은 주임신부님 보내주신 것도요. 아니 전부 다 말이에요."
이힘 기자 lensman@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