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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성월 특집] 하늘로 띄우는 편지<1>

"딸아, 지금은 볼 수는 없지만 기도하며 너를 만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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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위령성월이다.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남은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기억과 기도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이 쓴 `하늘로 띄우는 편지`를 연재한다. 첫 순서로 이종순(클라라, 72, 서울 우이본당)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딸(김성연 소피아, 1971~2011, 사진)에게 띄우는 편지를 소개한다.


사랑하는 딸에게.

 너를 하늘나라로 보낸 지 벌써 1년 하고도 한 달이 지났구나. 건강하고 사랑스럽고 예쁜 내 딸을 언제쯤 다시 만나서 한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네가 미국에 있을 때 목소리를 듣고 싶으면 언제든지 전화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곤 했지.

 너를 떠나보내고 나는 눈이 멀고 귀가 들리지 않고 가슴 속에 기둥이 빠져 나간 것 같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는데 이제 세상 어디에서도 너를 볼 수 없구나.

 2년 전 아빠 팔순을 축하하러 한국에 온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네 얼굴이 약간 부은 것 같아 이야기를 했더니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지. 나도 그렇게만 생각했어. 평소에 엄마, 아빠가 "건강 잘 챙겨라"고 얼마나 많이 당부했니.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고 이야기했잖아.

 미국에서 김치를 담가 먹고 틈틈이 수영, 요가, 산책도 하던 너라서 크게 걱정을 안 했어. 우리 아홉 식구가 아빠 생신 기념으로 일본 여행을 했잖아. 그게 너와 마지막 여행이 될 줄 누가 알았겠니.

 네가 암 진단을 받고 11시간 동안 수술을 마친 뒤에 의사 선생님이 내게만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하고 이야기했어. 나는 가족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네 오빠와 동생 부부를 불러 "성연이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라"고 부탁했어.

 병원에 온 네 오빠가 너와 산책을 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창문으로 보면서 나는 울고 있었어. 그 웃음을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날씨가 무척 좋았던 어느 날, 네가 병실 창문 밖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엄마.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하고 말했지. 나는 그때 네 눈을 피했어. 너는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어.

 집에서 투병생활을 할 때 종종 너와 북한산 둘레길을 산책했었지. 바람이 불면 너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어.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단다. 내게 그런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줘서 고마워.

 네가 떠난 지 13개월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너를 보내지 못하고 있단다. 몇 년 전 네가 미국에서 음대(성악) 박사 심사를 통과했을 때 교수님 다섯 분이 모두 만점을 주셨다며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했었지. 똑똑한 내 딸….

 네가 투병생활을 하던 1년 1개월 3일 동안 나는 네 안에서 살고, 너는 내 안에서 살면서 많은 사랑을 나눴던 것 같구나. 너는 생일에 하늘나라로 조용히 떠났지. 네가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힘겹게 숨을 쉬고 있을 때 "엄마가 우리 딸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하고 물었더니 너는 "응"이라고 대답했어. 그게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됐지.

 이렇게 편지로라도 너와 대화를 하면 가슴이 후련해져. 너를 보내고도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성당에서 기도하고 성가를 부르면서 너를 만난단다. 내가 살아있는 날까지 사랑하는 딸을 위해 기도할게. 다음에 꼭 만나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많이 사랑하자. 안녕!


이종순(클라라, 72, 서울 우이본당)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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