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5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최혜영 수녀의 성경말씀나누기] 마르코 복음서(8)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하루를 기도로 시작한 예수님 연민의 마음에서 병자들 치료
4.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 내셨다.” (마르 1 35~45 갈릴래아 지방에서의 활약상)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에서 발걸음을 옮겨 온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축귀와 병자 치유 활동을 펼치신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어느 특정 지역이나 특정 인물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만민을 위한 것이다.
예수님의 활약이 점점 커지고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예수님께서 사명 수행을 위해 당신 제자들과 함께 발이 부르트도록 전도활동을 펼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른 새벽 외딴 곳에서 기도하심 (1 35)
예수님의 하루는 기도에서 시작된다. 사명 수행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예수님의 정체성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원의식을 기반에 둔 것이었고 사명수행의 목표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었다.
도자기를 빚을 때도 중심이 바로 서지 않으면 몇 차례의 공정 과정을 거치는 동안 금이 가거나 결국은 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 캄캄한 새벽 외딴 곳에서 홀로 기도하시는 모습은 예수님께서 낮동안 무엇을 위해 그토록 바쁘게 일하셨는지를 깨닫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하루도 무턱대고 분주하지 않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하는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물으며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예수님처럼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서 우리의 신원의식을 잃지 않으려면 하느님과 홀로 외로이 대면할 수 있는 사막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마르코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이 두 번 더 나오는데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시고(6 46) 수난 전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신다(14 32~42).
나병 환자를 고치심 (1 40~44)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 일정(1 21~34)에는 시몬의 장모를 치유하신 이야기와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을 고치신 이야기 등 많은 병자를 고치신 이야기가 실린 반면 갈릴래아에서의 활약상에서는 나병 환자를 치유하신 이야기만이 대표적으로 실려 있다.
성경에 나오는 나병은 현대 의학에서 한센병이라 일컫는 문둥병 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피부병을 일컫는다. 피부병은 남 보기 불결하고 전염성이 강해서 극도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했던 것 같다. 이 때 병자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겪게 되는 소외감은 물리적인 고통보다 훨씬 심각한 것 같다.
필자의 경험에도 어린 시절 옻이 올라 얼굴이 논바닥처럼 갈라지고 눈이 퉁퉁 부어 학교에 갔을 때 나의 이상한 몰골과 황 냄새 때문에 무용 시간에 나와 짝을 안하려고 피해가던 친구들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무튼 인간 세상에서 외톨이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자살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잘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 환자의 이름 목격자들의 반응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예수님의 일정한 치유 행적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위대한 모습을 전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일 것이다.
또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데 무엇보다 병자를 치유하실 때 보여주시는 ‘연민’의 마음은 언제나 우리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에게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어떤 사본에는 “화를 내시며”라고 하는데 그리스 어 스프랑크니조마이(σπλαγχν?ζομαι)는 가여워서 애간장이 끓는 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예수님의 치유의 동기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이 연민의 마음이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나병 환자에게 대시며 “깨끗하게 되어라”고 하시니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고 하는데(41~42절)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사제에게 가서 몸이 나았다는 것을 보이고 성전에 예물을 바치라고 분부하신다.
이로써 그가 온전한 사회 구성원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보여 준다. 정화(淨化)의 궁극적인 목적은 관계의 회복에 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 8).
44절에 함구령이 다시 나오는데 함구령은 예수님의 정체가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치유된 나병 환자에 대한 함구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떠나가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린다. 구원의 기쁜 소식 곧 하느님의 복음은 널리 알려질 수밖에 없다.
기사입력일 : 2488호 2006-02-26일자

최혜영 수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6-02-27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6. 15

시편 97장 12절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