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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영 수녀의 성경말씀나누기] 마르코 복음서(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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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가르침
예수님 기적행위 통해 드러나

5. 예수님의 권능을 보이시는 기적들 (4, 35~6, 6a)

일찍이 괴테는 “기적은 신앙의 귀염둥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지만, 어떤 이들에겐 기적이 신앙의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의 핵심은 기이한 자연현상이나 사건들을 말하려는 데에 있지 않고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데 있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선포와 가르침은 예수님의 기적 행위를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앞으로 펼쳐질 네 가지 기적 이야기가 한 날에 있었던 것처럼 묶인 것도(4, 35~5, 43), 하느님 나라의 힘이 예수님의 가르침뿐 아니라 그분의 행동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을 알려 준다.

예수님의 신적 권위와 능력이 드러나는 기적 안에서 믿는 이들은 하느님 나라를 신앙으로 보게 되고, 하느님의 통치가 이미 지금 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풍랑을 가라앉히심(4, 35~41)

자연이적사화로 분류되는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자연 현상까지도 지배하시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점과, 개인이나 공동체나 아무리 어려운 위기에 처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믿음과 용기를 가지라는 교훈을 얻게 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뱃길 여행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서쪽 지중해에서 오는 바람과 동쪽의 시리아 사막에서 오는 바람이 갈릴래아 호수에서 마주치게 되면, 예기치 못한 돌풍이나 회오리 바람이 분다고 하는데, 마침 이러한 돌풍을 만나 배가 가라앉을 지경에 이르렀다. 물은 이미 배에 가득차 오르고 혼비백산한 제자들은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마치 악령을 꾸짖으시듯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라고 명령하신다. 이내 호수가 잠잠해진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수군거리며 놀라워한다.

한편 제자들에게는“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40절)하고 꾸짖으시는데, 이는 제자들에게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마르코가 삽입한 말이라 하겠다.

게라사의 광인을 고치심(5, 1~20)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고치신 이 축귀사화는 여느 사건과 달리 뭔가 드러나지 않게 풍자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사건은 이방인 지역에서 일어나는데, 더러운 영이나 무덤, 돼지 등은 불결과 통한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얼마나 괴로운 처지에 놓여 있었는지는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고 그가 밤낮으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했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7절)하고 외친다. 사탄이 예수님 발치에 엎드려 ‘하느님의 이름으로’말한다는 것은 어딘가 우스꽝스럽다. 더구나 그의 이름은 ‘군대(Legio)’이다. 레기오는 6000명 단위의 로마군 부대인데 왜 하필이면 로마 군대일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8절)는 예수님의 명령도 상관이 부하 군인에게 명령하는 말투이다.

예수님의 명령으로 미친 돼지 떼가 호수에 빠져 몰살을 당했다는데 예수님은 돼지들이 불쌍하지도 않으셨다는 말인가? 이야기는 왠지 사실적이기보다는 이집트 병사를 바다에 처넣으셨다는 출애급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고, 2000마리나 되는 돼지 떼는 집결한 군인들을 연상시킨다.

다음 이야기도 이해하기 어렵다. 사건이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사람들은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나서 예수님께 떠나 주시라고 청한다(14~17절). 이들은 무슨 연고에서 예수님께 떠나달라고 간청하였던 것일까? 재산상의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서일까?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가족에게 돌아가 이 사건을 알리라고 명령하셨고, 그래서 그는 물러가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한다(18~20절).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이 이야기는 단순한 축귀사화가 아니라 로마의 식민지하에 있던 백성들에게 예수님의 구원이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리는 희망의 메시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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