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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장흥군에서 유기 한우 사육에 열심인 한창본(맨 뒤)씨와 부인 차은지(앞쪽), 그리고 이재방 관산공소 선교사가 칡넝쿨을 먹이며 즐거워하고 있다. 전대식 기자 jfac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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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말 현재 국내 한우 사육두수는 203만3729두. 시ㆍ군 단위로 경주시가 5만4192두로 1위를 차지했고 전남 장흥군이 3만7720두, 강원도 횡성군이 3만4856두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식품안전성 문제가 사회 현안으로 불거진 가운데 `농민주일`(20일)을 맞아 전남 장흥군 유기 한우생산 농가를 찾았다. 국제곡물값 급등에 무차별 축산물 수입개방으로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축산의 꿈을 버리지 않는 유기 한우 축산농가를 통해 우리 농촌의 미래를 보기 위해서다.
정남진(正南津)에 섰다. 전남 장흥군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장흥읍 탐진강 둔치서 장이 열려 1년이면 6000여 두, 매주 120여 두씩 팔린다는 국내 두번째 규모 축산단지다.
그 장흥읍에서 20㎞ 가량 떨어진, 장흥군 용산면 월송농장. 한창본(42, 예비신자, 월송농장 대표)씨는 쇠뿔도 녹인다는 더위도 아랑곳없이 396.7㎡(120평) 규모 축사를 오가느라 여념이 없다. 그가 사육하는 한우는 18두에 불과하지만, 전부 유기 한우여서 손이 가는 데가 너무 많다. 어미 소에게서 떨어져 우는 송아지를 달래느라 1시간씩 아기소를 안마해주는 사랑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다.
#`전남 유기 한우` 1호 인증
유기농 곡물사료나 유기농 볏짚, 도정 뒤에 남는 유기농 쌀겨나 밀기울을 먹이로 주고, 때론 암소처럼 부드러운 육질을 유지하기 위해 특식으로 자신이 직접 재배한 유기농 키위도 후식으로 제공하다보면 하루가 짧다. 게다가 쾌적한 축사환경을 위해 축사 바닥에 자주 황토를 15t씩 깔아야 하고, 축사에서 나온 폐기물로 중금속이나 항생제가 섞이지 않은 유기 퇴비를 만들다보면 정말 시간이 너무 없다.
이런 땀방울 덕에 그는 지난해 12월 말 `전남 유기 한우` 1호 인증을 받았다. 그래서 최근엔 ㅎ백화점과 700㎏짜리 유기 한우 5두를 두당 1400~1500여 만원에 팔기로 계약했다. 초음파 검사를 해본 결과, 5두 모두 1등급 9단계 중 첫 번째, 두 번째 판정을 받아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 일반 한우가 500~600만 원에 팔리는 데 견주면, 그의 유기 한우축산이 얼마나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최근들어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서울대교구본부도 올 추석 특판상품으로 그의 유기 한우 시판을 검토하고자 관계자들이 직접 현장 답사를 다녀가기도 했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수입 장식소품 판매를 하다가 1999년 7월에 고향으로 귀농한 지 9년 만에 거둔 결실이다.
귀농 직후 광주ㆍ전남 귀농학교에서 자연순환농업에 대해 배운 그는 먼저 논농사에 치중, `적토미`와`녹토미` 같은 기능성 쌀을 생산했다.
면역조절 기능에 항암 효과가 큰 폴리페놀(polyphenol) 성분이 일반 쌀의 200배에 이르는 적토미, 혈당조절 물질 엽록소(chlorophyll) 성분을 극대화한 녹토미 등 맞춤쌀(100g 단위)은 ㄱ백화점 등에서 인기를 끌었다. 관행농법에서 탈피, 5~7년이나 걸려 거둔 성과로, 주변 농가들도 이젠 최소한 무농약 쌀을 생산하고 있다. 물론 수확량은 관행농 쌀에 견줘 7분의 1에 그쳤지만 기능성 쌀로 승부해 이긴 것이다.
#자연순환농업 조금씩 결실
또 유기농 쌀을 생산하며 남은 적ㆍ녹토미 볏짚 등을 활용하고자 1두씩 1두씩 한우를 키우다보니 18두에 이르렀다.
요즘 그가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은 중국서 수입한 유기 배합사료를 써야만 하는 현실이다. 그가 생산하는 유기농 작물이나 그 부산물만으로는 유기 한우 사육이 어려워 수입배합사료를 써야 한다. 물론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유기농 인증을 받은 사료만 수입해 쓰지만, 아직도 국내엔 유기농 배합사료 생산이 부족하다는 게 안타깝다.
이렇게 힘들여 키워 놓아도 판로가 쉽지 않은 현실도 암담하다. 지난 3년간은 사료 값만 들고, 도무지 팔리지가 않아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가톨릭농민회 광주대교구연합회 황소걸음분회에서 활동하는 그는 5명의 회원들과 함께 `작지만 탄탄한` 공동체를 일궈 나가고 있다. 9년 전 귀농 당시 시도한 자연순환농업이 이제야 조금씩 결실을 맺는 것처럼 하나하나 생명농업을 이뤄내면 언제 어느 때건 생명공동체가 이뤄지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요즘 그는 광주대교구 장흥본당(주임 최민석 신부) 관할 관산공소에서 교리교육을 열심히 받고 있다. 오는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때 세례성사를 받기 위해서다. 세례명도 이미 정해놨다. 농부들과 시골 공동체의 수호성인 `이시도로(Isidorus)`다.
한 대표는 "육질도 좋고 맛도 좋고 굽는 향도 좋은 쇠고기를 국민들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유기 한우 사육에 정부도 적극 투자해야 한다"며 "뉴질랜드나 호주처럼 방목형 축산이 불가능할 바에야 우리 축산농가도 한국형 유기축산을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