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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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려자들 속에서 하느님 만나러 왔어요"

[세계 선교현장을 가다] 연해주 우수리스크 타우복지관(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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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전교의 달을 맞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행려자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는 작은형제회의 선교현장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한민족 이주사의 아픔이 남아 있는 땅에서 하느님 현존을 증거하고 있는 선교사들 활동은 `땅 끝에 이르기까지`(사도 1, 8) 복음을 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선교사명을 새롭게 일깨워 줄 것이다.


 
▲ 김용철 신부와 이규덕(왼쪽) 수사가 타우복지관 마당에서 입소 행려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뒤에 보이는 타우복지관은 러시아 최초의 행려자 복지시설이자 연해주 최초 민간복지시설이다.
 

   "동네 양아치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내 팔을 이렇게 부러뜨려 놨어."
 "맙소사! 또 75도짜리 메틸 알코올이네. 이런 거 자꾸 마시면 죽는다고 했잖아요."

 러시아 연해주 제2의 도시인 우수리스크시 대로변. 이 도시 행려자들 사이에서 `왕초`로 통하는 안드레아(55)씨와 작은형제회 김용철(도미니코) 신부의 대화가 계속 엇박자다.

 안드레아씨는 마을 청년들에게 몰매를 맞아 팔이 부러진 게 원통해 하소연을 늘어 놓는다. 대낮인데도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얼마나 싸움을 하고 다니는지 콧잔등이건 입 주위건 성한 데가 없다.

 하지만 김 신부는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메틸 알코올 병을 뺏어 들고 야단치기 바쁘다. 행려자들은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 보드카 가격의 10분의 1 수준인 75도짜리 공업용 알코올을 사서 마신다.

 김 신부가 "다시는 이런 알코올 마시지 마라"고 연신 타이르는데도 안드레아씨는 "이 동네 양아치 놈들…"하며 구시렁거리기만 한다. 김 신부가 한숨을 내신 뒤 "솔직히 말해 당신이 더 양아치야"라고 하자 이들의 엇박자 대화는 결국 폭소로 끝나고 만다.

# 메틸 알코올 들이키는 행려자들
 김 신부는 인구 16만 명의 소도시 우수리스크에서 행려자 복지시설 타우복지관을 운영하고 있다. 타우(T)는 `하느님의 것`이란 뜻을 지닌 십자가 표시로 성 프란치스코 이래 프란치스칸들이 즐겨 사용한다.

 올해 초 문을 연 타우복지관에는 춥고 배가 고파서 찾아온 행려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왕초` 안드레아씨처럼 시도 때도 없이 술에 취해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바닥에 쓰러져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술주정꾼도 더러 있다. 하지만 김 신부는 술 취한 사람에게는 절대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숙식도 공짜로 제공하지 않는다. 밥 한끼에 2루블(우리돈 60원), 잠까지 자면 10루블을 받는다. 이 이용료는 그들의 최소한의 자존심이자 노동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알코올 중독자 알렉산드르 디모힌(48)씨는 지난해 연말 복지관 개관을 한창 준비할 때 찾아왔다. 겨우 내내 지하 난방 온수관 옆에서 잠을 잔 터라 몸에서 악취가 진동했다. 그가 "여기서 숙식을 하며 일하러 다니고 싶다"고 했다. 김 신부는 그를 수위실에서 재웠다. 그는 아침마다 상점을 찾아다니며 눈을 쓸어주고 용돈을 벌었다.

 그는 수중에 돈이 모이자 어디에 써야 할지를 몰랐다. 이따금 술을 마시고 들어와 쫓겨나기도 했다. 김 신부는 그에게 옷과 신발부터 사라고 했다. 그 다음에는 면도기와 샴푸를 사라고 시켰다. 그리고 행정 관청에 찾아다니며 신분증을 만들어줬다. 신분증이 없으면 사람 행세를 못하는 게 러시아다. 신분증을 발급받으려면 우리돈으로 벌금 10만원을 내야 하는데, 돈 가치를 보드카 병 수로 계산하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그런 걸 만들 리가 없다.

 두어 달 지나자 행색이 몰라보게 말쑥해진 알렉산드르씨는 호텔 쓰레기 처리 담당 책임자로 취직을 했다. 그러자 다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해 복지관에서 또 쫓겨났다. 다음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 신부가 그에게 재혼을 하라고 꼬드겼다(?). 그는 용기를 내어 꽃을 사들고 옛 애인을 찾아갔다. 김 신부는 몇 달 뒤 행려자들한테서 우연히 그의 소식을 들었다.

 "신부님, 어제 저녁에 알렉산드르가 아이를 안고 예쁜 부인과 산책하는 걸 봤어요. 그 부인 아이인 것 같던데. 그나저나 그 친구 몰라보게 달라졌던데요."

 꼬뜨브 알렉(50)씨는 지난해 겨울 동상에 걸려 손가락을 절단한 채 복지관 문을 두드렸다. 전문 금고털이범으로 24년간 수감생활을 하고 나와 2년 만에 알코올 중독자가 된 그는 요즘 복지관을 드나들며 `술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김 신부는 그가 술에 취해 찾아오면 쫓아내고, 맨 정신으로 오면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내준다.

 김 신부는 "하느님이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다시 감옥에 가는 것을 막으려고 손가락을 거둬 가신 것"이라고 타이른다. 그는 최장 18일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김 신부는 "행려자들이 겪는 추위와 배고픔을 해결해주러 러시아에 온 게 아니다"며 "사부 성 프란치스코가 나환자들 가운데서 하느님을 만났듯, 나는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행려자들 속에서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0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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