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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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특집-낮은 데로 임하소서] (1) 강원도 태백 장성광업소

어둠ㆍ분진 속에서 캐낸 ''까만'' 보석,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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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사고 줄었지만 과거 일했던 이들의 대다수, 진폐증 환자
어두움, 좁은 갱도, 끝없는 분진 등 일하기 힘겨운 탄광 현장
자신이 아니라 가족들 위해 힘든 일 마다 않는 사람들이 광원


 막장은 광물을 캐기 위해 파 놓은 갱도(坑道)의 막다른 곳을 일컫는 말이다. 그 막장을 뚫고 들어가 빛을 마주치길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착각이다. 더 거대한 어둠이 기다리고 있는 어둠의 끝과 시작이 닿아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 어둠은 막장을 이루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어둠 뿐이라면 `막장 인생`처럼 무엇인가를 꿈꾸는 것조차 사치가 되는 인생을 비유하는 수식어로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막장의 진짜 모습은 어둠보다 더 지독한 열기와 굉음, 숨 조차 쉬지 못하게 하는 가스와 먼지들이다. 그리고 막장 속에서 보낸 시간은 굳어진 폐와 헤질대로 헤진 몸을 남겨준다.
 도저히 생(生)이 불가능할 것 같은 그곳에서도 삶은 묵묵히 이어져왔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먹고 살기 위해` 혹은 `자식들 공부 시키기 위해` 죽을 각오로 막장 속을 헤쳐 다녔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산재사목실 담당 임경영 신부, 정점순 수녀, 직원 장연순(로사)씨, 이정임(마리아)씨, 여의도 성모병원 산업의학과 레지던트 홍정연씨, 산재노동자협회 상담부장 김갑경씨와 함께 17~18일 강원도 태백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에서 탄광의 막장을 체험하고 왔다.




 
▲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모습이다.
왼쪽부터 이광선 부소장, 홍정연 레지던트, 김갑경씨, 임경영 신부, 이정임씨, 남영순 생산부장
 

    갑자기 찾아온 한파에 18일 태백의 기온은 영하 7도를 밑돌았다. 살을 에는 듯한 산바람은 광업소를 찾은 방문단에게 앞으로의 체험이 험난할 것임을 말해주듯 거세게 몰아쳤다.
 방문단은 탄광에 들어갈 준비를 하러 탈의실로 들어섰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장화를 신고 장갑을 꼈다. 노란 안전모를 쓰고 안전모에 랜턴을 단 뒤에야 비로소 탄광 체험을 실감할 수 있었다. 탄광 안내는 장성광업소 이광선 부소장과 남영순 생산부장, 김우현(베다) 보안실장이 맡았다.
 "이곳은 해발 600m 입니다. 탄광으로 가려면 여기서 지하로 900m 더 내려가야합니다. 안에 들어 가시면 더울 겁니다. 밖은 한겨울이지만 탄광은 늘 한여름이지요. 지금쯤 30도 가까이 될 겁니다."
 이 부소장은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갱 안으로 10여 분 걸어 들어가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워낙 매서운 바람을 맞고 온 터라 더울 것이라는 설명이 선뜻 와닿지 않았다.
 오가며 마주치는 광부들은 "안전!" "안전!"을 외치며 인사를 대신했다. 석탄산업이 호황이던 1970~80년대 우후죽순 탄광이 생겨나면서 안전사고도 많이 일어났다.


 
▲ 막장으로 가기 위해 열차를 타고 있는 방문단. 안전모 랜턴 빛이 없다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화조차 힘든 갱

 지하 굴 속에서 발파 작업이 진행됐기에 탄광사고는 일어났다 하면 대형 사고였다. 아침에 출근하는 광원들은 야간 작업 때 사고로 죽은 동료 시신이 실려나오는 것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예사였다.
 하지만 현재 사망 사고는 1년에 1~2건 정도로 안전사고는 많이 줄어들었다. 작업 환경과 근무 조건도 예년에 비해 월등히 좋아졌다. 주5일제 근무에 근무 시간도 3교대에서 2교대로 짧아졌다. 높은 연봉에 자녀 학자금 전액 지원 등으로 취업난 속에서 광부 취업 경쟁도 치열해졌다.
 덜컹, 덜컹, 덜컥.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방문단을 지하 900m로 데려다놓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둠 속 탄광이 시작된 셈이다.
 낡은 열차를 타고 또 한참을 안으로 들어갔다. 갱은 점점 좁아지고 랜턴빛이 닿지 않는 곳은 모두 새카만 어둠 뿐이었다. 쿠쿠궁 쾅. 저 멀리서 둔탁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철커덩 철커덩. 오른편에서는 채취한 탄을 실어나르는 컨베이어 벨트가 쉼없이 돌고 있었다.
 "이제 모두 마스크를 쓰셔야 합니다!"
 남영순 생산부장은 답답함을 참지못해 마스크를 벗고 있던 몇몇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각종 기계 소음과 열차 소리, 컨베이어벨트 소리로 갱 내에서는 소리치지 않고서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사실 마스크처럼 곤욕스러운 것이 없다. 가뜩이나 더운 갱 안에서 두터운 방진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벗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각종 먼지와 탄가루, 가스를 고스란히 마시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분진과 가스는 폐가 굳어지는 진폐증의 주원인이다. 한국진폐재해자협회(회장 주응환)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진폐환자는 3만 명에 이른다. 잠복기로 인해 진폐환자들은 2020년까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있다.
 1960~70년대만 해도 광부들은 마스크 없이 온몸으로 탄가루를 마시며 일하는 게 일상이었다. 지금처럼 좋은 방진마스크도 없었을 뿐더러 단 30초만 쓰고 있어도 금방 벗어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데 몇 시간씩 마스크를 쓰고 있기란 불가능했다. 때문에 당시 일했던 이들 가운데 대다수가 진폐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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