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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말기암 환자의 임종 준비

그저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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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성월(慰靈聖月). 먼저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달이지만,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달이기도 하다. 위령성월을 맞아 성모꽃마을(원장 박창환 신부)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한 말기암 환자를 만났다.


"두려움이요? 왜 두려움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인생의 갈무리만 잘하면 행복한 삶이 열리는데 자신감을 갖고 갈무리 한 번 잘해보자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정관수(타대오, 58, 인천 계산동본당)씨는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는 물음에 차분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그는 지난 3월 17일 성모꽃마을에 들어와 만 7개월째 호스피스병동에서 지내고 있다.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병상에 누워 지내기 시작한 지 2개월째다. 최근에는 손에 힘이 없어 일어나기조차 힘들어졌다. 그만큼 하느님의 부르심이 가까왔음을 느낀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한다.
 `마지막까지 통증을 덜 주시고 즐거움 속에 주님께 가까이 가서 편히 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하지만 암이 주는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간과 폐로 전이된 암세포가 쇠약해진 정씨의 육신을 마구잡이로 공격할 때는 도저히 참아낼 길이 없다. 처음에는 마다했던 통증완화제를 지난 7월부터 복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고통에 지는 나약한 모습을 주위에 보여주고 싶지 않다. 정씨 자신에게도 용납이 안 된다. 통증을 이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가 더욱 간절해진다.
 이런 기도와 함께 정씨한테는 매일매일 바치는 기도가 있다. `십자가의 길 기도`와 `자비의 기도`다. 이 기도들은 어떤 지향으로 바치냐고 묻자 그냥 바친다고 한다. 그냥 바치는 기도가 아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을 십자가의 길에 담아 바치는 기도다. 하느님을 외면하고 살아온 삶을 주님 자비하심에 맡겨드리는 기도다.
 정씨는 6살 때 세례를 받았지만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거의 평생 냉담하고 살아왔다. 깔끔한 성격인데다 정씨 표현에 따르면 "한국 남자들에게 있는 유교적 가부장 의식의 못된 습성"이 몸에 배 있었다.
 그런 못된 습성이 아내나 아이들에게 독소의 씨앗이 된 줄도 모른 채 그렇게 살아왔다. 뒤늦게 잘못임을 깨달은 회한의 삶이었다. 30대까지 직장생활을 하다 자영업을 시작한 정씨는 IMF 사태로 부도를 맞았다. 집은 경매 처분됐고, 정씨는 본의 아니게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그 여파는 오래 갔다.
 2006년 3월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정밀 진단 결과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
 "갑자기 멍해지더군요. 한편으로는 담담하기도 했지만 당시 심경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복합적이었습니다."
 `낫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다.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도 시작했다. 그렇지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암세포를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1년이 넘으면서 암세포는 골반과 간에까지 전이됐고, 2년쯤 지나자 간암이 더욱 악화됐다.
 2008년 3월 정씨는 제발로 성당을 찾았고, 30년 이어진 냉담을 풀었다. 그리고 두어달 후 본당 한빛성가대에 찾아가 입단을 자원했다. 병이 잠자고 있던 신앙을 일깨운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요. 그렇지만 주님을 영접하고 나니까 이제야말로 `이익을 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익은 기도를 통해서 효험을 보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몸에 병이 생기도록 했을 뿐 아니라 가까이 계시는 주님을 멀리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잘못을 깨달은 데다 이렇게 주님을 모시게 됐고 죽어서도 저를 구할 수 있게 됐으니 이보다 더 큰 이익이 어디 있겠습니까?"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과 기도서를 폈다. 그 전에는 마치 추상명사처럼 뜬 구름 같던 성경 말씀이나 기도문들이 이제 그토록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와 닿을 수가 없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 정씨는 자신을 통절히 반성하게 됐다.
 "제가 얼마나 엉터리로 살면서 가족들에게 불화를 일으켰는지 뒤늦게서야 깨달은 거지요."
 그러면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정씨는 갈수록 병세가 악화되자 조금씩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난 3월 16일 가족회의를 열어 장례절차까지 협의한 후 이튿날 성모꽃마을에 들어왔다.
 열흘 후 정씨는 병원관계자에게 청원서를 썼다. 어떠한 항암치료나 방사선 등의 치료를 추가로 받기 원치 않고, 인공호흡이나 심폐소생과 같은 생명연장을 위한 응급조치도 원치 않으며, 그저 자연 상태로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활용 가능하다면 자신의 눈 각막을 기증코자 하니 받아주기 바란다는 각막 기증 의사도 덧붙였다.
 정씨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안다.
 가족에게는 "용서해 달라"는 말을, 아는 이들에게는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전한다는 정관수씨. 그는 하늘나라로 가는 마지막 길을 끝까지 의연하게 자신있게 갈 힘을 달라고 오늘도 그분께 기도한다. 이렇게 가을이 깊어간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 성모꽃마을에서 투병중인 정관수씨와 보호자인 아내 이미숙(베로니카)씨.
 

 
▲ 이미숙씨가 그저 미안하다는 남편 얼굴을 바로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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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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