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두물머리.
옅은 오후 안개 사이로 햇살은 솜털처럼 퍼지고, 물가에 솟은 갈대는 실루엣 숲을 이룬다. 물고기가 수면 위로 뻐끔거리고, 물가에 다가서니 아직 겨울 쉼터를 찾지 못한 풀벌레들이 깜짝 놀라 날아오른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줄기가 맞닿아 `두물머리`라 불리는 이곳이 앞으로 더는 평화롭지 못한 곳이 될지도 모른다. 정부가 추진 중인 4대 강 개발사업에 이곳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1976년부터 유기농 농사가 시작된 두물머리는 수도권 일대 35만 가구에 토마토와 딸기, 배추 등 친환경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서울 근교 최대 유기농산물 생산지다. 이곳이 4대 강 사업에 의해 절멸할 위기를 맞았다.
상수원 오염 불 보듯 뻔해 정부 계획대로 공사가 시작되면 굴착기와 불도저, 덤프트럭이 유기농지와 인근 강어귀를 긁어내고 시멘트로 메워 자전거 전용도로와 생태공원을 만든다. 서울 동북부 및 경기도 양평ㆍ구리 등 일부 시민을 위한 위락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고인 물은 썩는데도 이곳에 보를 설치해 물을 막겠다고 한다. 물이 불어나면 농지는 수몰된다. 게다가 30년 넘게 유기농산물을 생산해온 100여 가구 농민들은 다른 곳으로 쫓겨갈 처지다. 강에 깃든 많은 생명도 종적을 감출 수밖에 없다. 수도권 2000만 명의 젖줄인 팔당 상수원이 오염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팔당 지역 농민회 서규섭 대표는 "두물머리는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 개최 예정지이며, 유기농 박물관 건립계획까지 세웠는데 정부가 유기농지를 없애는 4대 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농민들의 바람은 예전처럼 농사를 짓게 해 달라는 소박한 것뿐"이라고 호소했다.
얼마나 큰 불행을 끼칠지... 한편 11월 24일 두물머리에서 최덕기(전 수원교구장) 주교 주례로 `4대 강 사업 중단과 팔당 유기농지 보존을 위한 생명평화미사`가 봉헌됐다. 미사에 참례한 수원교구 공동선 실현 사제연대와 창조보전연대 등 서울ㆍ수원ㆍ의정부ㆍ인천 교구 사제단과 농민, 신자 등 500여 명은 4대 강 사업을 멈추고 유기농지를 보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미사 뒤에는 3.2㎞ 떨어진 양수리성당까지 걷기 행사도 열렸다.
조영준(수원교구 버드내본당 주임) 신부는 강론에서 "멀쩡한 4대 강이 죽어간다며 이를 살려야 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앞으로 이 땅의 자연과 국민에게 얼마나 큰 불행을 끼칠지 알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팔당생명살림 영농조합원 김양현(이멜다, 42, 수원교구 덕소본당)씨는 "공사가 시작되면 두물머리에서 생산하는 유기농 채소를 먹을 수 없다"며 "함께 식사하고 어울리며 가족처럼 지내던 농민들이 쫓겨나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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