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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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기획] 불법 체류노동자들의 기다림

그들, 아픔과 눈물 닦아줄 친구를 기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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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116만 명이 넘고 이 가운데 불법체류자는 18만 명이 넘는다. 불법체류자 대다수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왜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히면서도 이 땅에서 계속 `체류`하고 있는가.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세 사람의 사연과 바람을 듣는다.


사연 하나 , 돼지 농장을 꿈꾸다

필리핀 세부가 고향인 탁손(가명, 39)씨. 2005년 8월 고용허가제도를 통해 합법적으로 입국한 그는 철강 공장에서 월급 76만 원을 받으며 4개월 동안 일하다 그만 두었다. 건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일이 너무 고됐다.
 두 번째로 구한 직장은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이었는데 45일 만에 그만 뒀다. 독성이 심한 화학물질을 다루다 보니 목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2년 동안 약을 먹어야 했다.
 탁손씨의 세 번째 직장은 안산에 있는 한 알루미늄 공장. 1년 동안 열심히 일했고 재계약을 하려 했지만 공장이 부도 직전이어서 할 수가 없었다.
 네 번째로 구한 직장은 파이프 연결 고리를 만드는 공장. 그러나 월급이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에 3주 만에 그만 뒀다. 그때부터 탁손씨는 불법체류자가 됐다. 2007년 6월이었다.(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고용주 허가 등 정당한 사유 없이는 직장을 바꿀 수 없고 또 3회 넘게 직장을 바꿔도 불법체류 신분이 된다는 법 규정에 따른 것이다.)
 "아내와 딸을 생각하면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수소문해서 직장을 구했지요."
 그래서 다시 얻은 직장은 아산의 한 프레스공장. 한 달에 28일, 하루 12시간씩 손을 다쳐가면서 일을 했다. 하지만 4개월 만에 그만 뒀다. 사장이 월급을 제때에 주지 않은 것이다. 3개월치는 받아냈지만 마지막 한 달치는 끝내 받지 못했다고 한다.
 다시 인천에 제철공장에 취업했지만 전 공장에서 다친 손 상처가 재발하는 바람에 일주일 만에 관둬야 했다. 2007년 12월 쯤, 불법체류자 단속이 심할 때라 구직은 꿈도 꾸지 못하던 상태였다. 손 상처가 심해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허리까지 아파왔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쉼터에서 요양하며 지내다가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포천 의류공장에서 3개월, 오산 가구공장에서 3개월 일했다. 영세한 공장들이어서 연중 내내 일할 일감이 없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는 경기도 광주 가구공장에서 일했는데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방글라데시 친구 2명이 붙잡혀 갔어요. 겁이 나서 공장에 가질 못했지요."
 탁손씨가 마지막으로 일한 곳은 경기도 마석의 한 금속공장. 지난 3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직장도 11월 11일로 끝이었다.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렸고, 공장주인은 벌금을 내고 나서 탁손씨에게 그만 오라고 통보한 것이다.
 현재 한 쉼터에서 지내며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고 있는 탁손씨는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언제 붙잡혀 강제 추방될지 모르지만 3년은 더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월급을 받으면 잔업수당까지 포함해서 꼬박꼬박 집에 부쳤습니다. 아내는 그 돈으로 돼지를 사서 키우고 있어요. 지금 한 20마리쯤 됩니다. 3년 동안 더 벌어 필리핀에 돌아가면 돼지농장을 할 겁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단속이 계속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3년이 5년으로 늘어날지도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국이 일할 여건이 나아요. 우리는 한국사람들이 싫어하는 3D업종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요. 꿈이 있기 때문이지요.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우리를 범죄인처럼 대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연 둘, 열린 마음을 기대하며

 태국여성 사나(가명, 30)씨는 현재 병원에 입원해 있다. 올초부터 몸이 좋지 않았는데 갈수록 힘들어져 외국인노동자 상담소 도움으로 입원할 수 있었다. 병명은 심장비대증. 입원하던 날은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며칠 지나니 안정된 탓인지 훨씬 기분이 좋다.
 사나씨는 2007년 여름 관광비자로 입국했지만 눌러앉는 바람에 불법체류자가 됐다. 사실은 취업하려고 한국에 온 것이다. 브로커에게 600만 원이나 되는 뒷돈을 줬다.
 사나씨는 창틀 만드는 공장에서 숙식을 하면서 일했다. 월급은 90 만원 정도를 받았고, 절반은 고향에 부쳤다. 그동안 고향에 부쳐준 돈은 모두 브로커 비용 마련하느라 진 빚을 갚는 데 썼다. 5년 동안 부지런히 벌고 저축하면 2000만 원 정도는 모을 수 있다. 그 돈으로 태국에 돌아가면 작은 가게를 내고 싶다.
 공장에서도 잘 대해주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관계도 원만하다. 빨리 일어나서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아름답다.
 "불법체류자라고 해서 너무 심하게 단속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해친 것도 아닌데…. 어떤 면에서는 한국 사장님들을 돕는 것이고 한국 경제도 돕는 일이잖아요. 차별대우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대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사연 셋, 친구가 되길 바라며

 필리핀인 페드로(가명, 42)씨는 본의 아니게 불법체류자가 됐다. 그는 2006년 10월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했다. 첫 직장은 인천의 한 화학염료공장. 독성 냄새를 견디지 못해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두 번째로 구한 직장은 경기도 화성 동파이프 제작회사. 1년 1개월을 근무했다. 일이 많아지고 책임도 늘어났지만 올려주겠다던 월급은 오르지 않았다. 콘테이너로 만든 간이 숙소에서 한겨울을 나야 하는 것이 끔찍해서 그만두었다.
 세 번째로 구한 직장에서는 14개월 있었다. 성실성도 인정받았다. 3년이라는 기간이 차면서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들은 3년이 만료되면 일단 출국했다가 다시 입국해야 한다는 법규(내년부터는 5년으로 바뀜)에 따라 출국 준비를 하던 중 페드로씨는 뜻밖의 소식을 접해야 했다. 관계자가 서류 관리를 잘못하는 바람에 출국하고 나면 재입국이 불가능한 상태가 돼 버린 것이다.
 "불과 얼마 전이에요. 요즘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돈을 모아 사업을 하고 싶다는 페드로씨는 한국이 경제위기에서 가장 빨리 회복중인 나라여서 불법체류도 많은 것 같다며 그렇지만 범죄자도 아닌데 불법체류라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하고 단속하는 일은 고려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국적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지 않고 같은 친구로, 동료로 대해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진 친구들이 필요합니다."


 비율로 보자면 길거리에서 만나는 외국인 20명 중 3명은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에서 일하는 이들이 절대 다수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불법체류자들은 서럽다. 남들이 싫어하는 3D업종에서 힘들게 일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그들을 열린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동료와 친구로 여기지 않고 법을 위반한 범죄자로만 여기기 때문에 서러운 것이다.
 대림시기, 가장 낮은 이들의 친구로 오시는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시기다.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은 친구를 원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친구가 돼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성탄 때에 예수님은 우리 친구로 오신다.

글=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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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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