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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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병자의 날 특집] 원목 사제의 사목현장 24시

힘겨운 투병 생활의 ‘희망 배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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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원목실에서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모여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월 11일, 제18차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담화를 발표했다. 교황은 이번 담화에서 특별히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 설립 25주년과 함께, 병자들을 위해 일하는 원목 사제를 격려했다. 사제의 해를 보내면서 병자들을 위한 사목자를 기억한 것이다.

원목 사제, 그들은 종교에 앞서 질병의 고통으로 얼어버린 몸과 마음을 녹이고, 생의 문턱에서 실낱 같은 희망을 전하는 하느님의 일꾼이다. 이뿐만 아니라 생명을 다루기에 긴장을 늘 달고 사는 병원 직원들에게도 원목실과 원목 사제의 존재는 남다르다.

가장 힘들 때, 가장 외로울 때 짐을 함께 들어주는 원목 사제의 길.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그들만의 특별하고도 일상적인 사목현장을 찾아갔다.

# 본관 원목실에서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본관 지하 1층의 한 켠에 자리 잡은 원목실. 구석진 곳이지만 그 자리에 있기에 더욱 조용하고 아늑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크고 환한 미소를 머금은 원목 사제 김한수 신부와 사무장 권미영(마르타)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살림살이는 윗벽을 매운 책꽂이에 책들과 책상, 옷장이 전부. 한쪽 벽에 각 병실 입원 환우 파악을 위한 게시판이 눈에 띈다. 벽인 줄 알았던 미닫이문을 열자 조그마한 경당이 나왔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서자 제대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여인이 인기척을 느끼고 황급히 눈물을 닦는다.

제대에는 메모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모두 누군가를 위한 기도지향을 적어 놓은 것. 내 가족, 친구를 위해 정성껏 눌러쓴 글씨에 사연들이 묻어난다. 김 신부는 수시로 이 모든 기도를 하느님께로 전달하는 배달부다.

“이곳에서는 화, 수, 금요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9시30분에 출근해 10시부터 11시30분 미사 전까지 오전 방문을 다니고, 미사 후에도 다시 환자들을 만나러 가죠.”

김 신부가 하루 일과를 소개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환자들을 만나는 일. 환자들에게는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된다.

“육체적 고통은 심리적 아픔을 동반합니다. 함께 있어주고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많이 위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 찾아나서는 사목

김 신부와 함께 원목실을 나서 환자들을 만나러 갔다. 난소암을 앓고 있다는 전영선(실비아·46·춘천교구 원통본당)씨의 병실에 도착했다. 딸과 함께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전씨가 김 신부를 반갑게 맞았다.

“신부님을 뵈면 마음이 평안해져서 속에 있는 말을 다 터놓게 돼요. 원목 신부님이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 주시니 이렇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김 신부는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린 전씨의 머리에 손을 얹고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당일 아침에도 고비를 넘겨가며 힘들게 버텼던 전씨는 김 신부의 기도와 함께 다시금 평온을 되찾는다.

“신부님은 늘 변함이 없으세요. 신부님이 저를 위해 기도를 해주시고 손을 잡아 주시는 것만으로도 잠시나마 병을 잊게 됩니다.”

# 암센터 원목실

병실을 나와 오후 평일미사 봉헌을 위해 암센터 원목실로 이동했다. 삼성서울병원은 본관과 암센터 두 개의 원목실을 보유하고 있다. 2008년 병원에 암센터가 생기면서 새 원목실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김 신부와 원목실 식구들은 암센터 원목실을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원목실을 드나드는 환자, 보호자, 봉사자를 비롯해 청소부 아주머니까지 모든 이의 마음이 십시일반으로 모여 완성됐기 때문이다.

따뜻한 마음이 모여 완성된 원목실인 만큼 병원의 무겁고 날카로운 분위기와 달리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받게 한다.

“이곳 원목실은 찾아오시는 분들이 따뜻함을 느끼실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편안하게 들를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암센터 원목실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후 5시30분에 미사가 봉헌된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 이른 시간에도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하나둘씩 원목실로 들어왔다. 김 신부는 미사 준비에 신경을 쓰고 있는 중에도 환자, 보호자들이 들어오자 안부부터 챙긴다.

미사가 끝나고 모두 돌아간 시간, 또 다시 원목실이 분주해졌다. 김 신부가 진행하는 직원(간호사) 성경공부모임이 열린 것.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채울 수 없었던 영적갈증을 일터 안에서 채울 수 있어 반응도 좋다.

이 밖에도 삼성서울병원 원목실은 원목실 담당 김은희 수녀가 운영하는 기도회와 의대 학생들의 모임, 예비자 교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 원목 사제로 살기

김 신부는 원목 사제란 ‘환자들의 아픔에 동반하는 사람’, ‘그들에게 손을 내밀며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현존을 보여주는 사람’, ‘하느님 축복을 빌어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금 원목 사제로 사는 이 순간이 사제로서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많은 행적 중 ‘병자들을 치유하심’에 저도 조금이나마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은 인력으로 두 원목실을 꾸려나가기에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아픔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먼저기에 다시 힘을 낸다.

“마치 핸드폰 배터리 같아요. 병원에서 환자분들을 만날 땐 마음을 담아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완전히 방전되죠. 밤새 다시 충전해 내일을 맞이합니다.”

김 신부는 환자들에게도 내일을 맞이할 희망 배터리를 선사하고 싶다.

“지금 당장은 많이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럽지만 여러분을 기억하고, 기도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그 사실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가톨릭신문  201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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