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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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성월 기획] 순교자, 그들이 남긴 것 (상)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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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우·가족들에게 남긴 말

순교한 이들의 ‘순교’는 따라죽을 순(殉)과 가르칠 교(敎)자를 쓴다. 죽음으로 자신의 하느님을 증거하고, 목숨을 바쳐 사람들에게 ‘나의 하느님’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 놓인 순교자 성월 9월, 순교자들이 목숨을 내놓기 전 남긴 말과 행적의 향기를 맡으며, 그들의 걸음을 따라 우리도 ‘나의 하느님’을 만나보자.

부모가 한세상을 살며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물려주고자 하는 것처럼, 신앙선조라고 부르는 순교자들 역시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남겼다. 그들이 남긴 말은 때로는 책과 서한으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으로 면면히 우리에게 이어져왔다.

사제로서 목숨을 다한 순교자는 교우들의 마음에 가르침을 아로새겼고, 순교를 앞둔 평신도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에게 자신의 믿음을 남겼다. 자신을 재판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을 보인 순교자와 책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하느님을 증거한 사람들. 그들이 남기고 떠난 보배로운 말과 행적은 지금까지 ‘순교의 향기’로 남아 우리 신앙 앞에 우뚝 선다.

교우들에게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은으로 세상에 나고 주은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배주배은 하니 주의 은혜만 입고 주께 득죄하면 아니 남만 못하리.”

김대건 신부(1821~1846)의 ‘마지막 회유문’은 1846년 8월 말 옥중에서 교우들에게 쓴 것으로 그가 남긴 서한 가운데 스물한 번째 편지다.

김대건 신부는 회유문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의 하느님을 이해시키고, 사랑을 전하고 있다. 그는 하느님을 ‘밭을 심는 농부’에, 우리들을 ‘벼’에 비유한다.

“주 땅을 밭을 삼으시고 우리 사람으로 벼를 삼아 은총으로 거름을 삼으시고 강생구속하여 피로 우리를 물주사 자라고 염글도록 하여 계시니, 심판날 거두기에 이르러 은혜를 받아 염근 자 되었으면 주의 의자로 천국을 누릴 것이요.(중략)”

곧 목숨을 바칠 사제는 남은 교우들과 미래를 사는 우리들에게 할 말이 많다. 그는 아이를 조심시키는 부모와 같이 죽음을 눈앞에 두었으면서도 우리와 이별하는 것을 애통해하고, 앞으로 세속 마귀를 치고, 힘을 다하고,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극진히 조심하라고 이르기를 잊지 않는다.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 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천주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 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 잘 있거라.”


 
▲ 김대건 신부가 1846년 8월 말 옥중에서 작성한 ‘마지막 회유문’.
김 신부는 죽음을 앞두고 교우들에게 힘을 다하고,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극진히 조심하기를 당부했다.

어머니와 가족에게

자신의 하느님을 증거하며 떳떳이 나아가는 순교의 길에도 가장 눈에 밟히는 인물은 어머니일 것이다. 이경도 가롤로(1780~1801,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는 자신의 사형 판결문에 서명을 마친 날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어머니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는 자식의 말은 비장하다.

“다만 이 세상에서 어머니께 자식 노릇을 못하고 조금치도 뜻을 받들어 모시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애달프고, 뉘우쳐도 돌이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내일이면 이 세상을 영영 떠나게 되니, 어머니 자식 노릇을 할 수 있는 날이 없사옵니다.”

여동생인 이순이 루갈다(1782~1801,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 또한 어머니에게 순교를 앞두고 편지를 쓴다. 서한에는 섬세한 이별의 정한과 함께 순교에 대한 당당함이 나타나 있다. 그는 순교는 ‘부족하고 못난 자식을 참되고 보배로운 자식이 되게 하는 것’이라며 ‘순교의 열매를 맺기도 전에 붓을 드는 것은 경솔한 짓이나 어머니가 걱정돼 위로를 삼으시도록 하기 위해 편지를 쓰는 것’이라고 했다.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 순교의 끝에서도 어머니는 자식들의 마음을 애달프게 하는 ‘가장 소중한 이’였기 때문이다.
 

 
▲ 치명자산 성지에 있는 이순이 순교자의 묘소.
 

순교자들은 이처럼 하느님을 증거하는 순교 정신뿐 아니



가톨릭신문  201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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