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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주일] 어둡던 이들이 저로 인해 웃음 되찾을 때 행복

부산 금곡본당 사회복지분과위원회 부회장 박태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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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12월 13일 저녁 7시 40분. 박태현(알렉산데르, 54, 부산 금곡본당)씨는 21년이 지난 지금도 비가 쏟아졌던 그 날 저녁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뀐 순간이었다.

 회사원이었던 박씨는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교차로에 서있던 그의 승용차를 뒤에서 달려오던 화물트럭이 들이받은 대형사고였다. 박씨가 며칠 만에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온몸은 마비된 상태였다.

 박씨는 "그때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하느님과 함께하며 기쁘고 행복하게 살지 못했을 것"이라며 "내가 주님의 충실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 늘 감사하며 행복하게 산다"고 말했다.

 임대아파트가 밀집돼 있는 금곡동은 부산에서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다. 박씨는 2000년부터 본당 사회복지분과위원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있다.

 휠체어를 타고 이집 저집을 종횡무진 누비는 그를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홀몸어르신, 소년소녀가장, 홀로 사는 환자 등 그가 돌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고, 또 동작은 어찌나 빠른지 별명이 `금곡동 홍길동`이다.

 박씨의 일은 신자여부에 관계없이 도움이 필요한 가정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하루에 방문하는 집이 5곳이 넘는다. 쌀이 떨어진 집에는 휠체어를 타고 직접 쌀을 배달해주고,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홀로 살아가고 있는 어르신에게는 말벗이 돼주며 아들 노릇을 한다.

 몇 년 전 추석에는 혼자 지내는 어르신이 눈에 밟혀 고향을 내려가는 것도 포기하고 홀몸어르신 세 끼 밥을 다 챙긴적도 있었다. 그가 상주 노릇을 하며 장례를 치르고 보내드린 어르신이 벌써 네 명이다.

 "힘들게 살고 계신 분들을 보면 `어떻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밖에 나지 않습니다. 사는 게 힘들어 항상 표정이 어둡던 이들이 저로 인해 웃음을 되찾을 때 정말 얼마나 행복한 지 모릅니다."

 21년 전, 33살 나이에 하반신 마비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박씨에게 남은 건 절망뿐이었다.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고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던 어느날 의사가 폐활량 회복에 좋다며 그에게 하모니카를 건넸다. 그때 처음 연주한 곡이 가톨릭성가 `주 예수와 바꿀 수는 없네`였다. 사고 2년 전 세례를 받았지만 신앙생활은 소홀했던 박씨가 자신도 모르게 성가를 연주한 것이다. 그 하모니카 연주가 박씨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병실에서 흘러나오는 연주를 듣고 원목실 수녀가 박씨를 찾아왔다. 한참 동안 박씨 사연을 듣던 수녀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알렉산데르가 꼭 할 일이 있다"며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다른 장애우들한테 힘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녀의 한 마디가 절망에 빠져있던 박씨의 마음을 열었다. 그날 이후 박씨는 달라졌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려면 일단 모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재활훈련에 매달렸다. 허리 힘을 기르기 위해 자동차 타이어를 몸에 묶고 기어다녔고 틈만 나면 이를 악물고 수영을 했다.

 1990년에는 다른 장애인들과 뜻을 모아 부산교구 가톨릭지체장애복지회를 설립했고, 1999년 금곡동으로 이사온 후 어려운 이웃돕기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박씨의 생활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다. 46㎡ 남짓한 작은 아파트에서 든든한 후원자인 아내 하맹화(로사, 52)씨와 아들, 조카가 함께 살고 있다. 수입은 장애인 연금과 멀리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두 딸이 주는 용돈, 교통안전공단에서 `교통사고줄이기` 강사로 이따금 활동하며 받는 돈이 전부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는 그 돈도 자신을 위해 써 본 적은 거의 없다.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가장 소중한 생명을 주셨는데 저는 그분께 드린 것이 아무 것도 없더라구요. 하느님 사업을 조금이라도 돕는 게 그분께 보답하는 길입니다.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저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며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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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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