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성탄 르포] 교구 출신 선교사 신용생씨의 삶

“신자 8명 외딴섬 공소 희로애락 함께하며 살죠”, 2년째 임자도·지도 오가며 신자 재교육·공소 전례 등, 하느님 말씀 전하기에 바빠, “아담한 공소 짓는게 꿈”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선교사 신용생(스테파노)씨가 임자공소를 소개하고 있다.
 

오늘, 세상을 밝힐 아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기쁜 소식이 세상에 울려 퍼졌다.

온 세상이 그 기쁜 소식을 만끽하는 이 순간에도 구석구석을 누비며 더 많은 이들에게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다. 세상 곳곳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우편배달부, 선교사들이 그 주인공이다.

사제의 사목적 배려가 미치지 않는 오지까지 마다않고 나서는 선교사들이 있기에 우리 이웃들은 더욱 가까운 곳에서 기쁜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예수 성탄 대축일을 맞아, 광주대교구 망운본당 임자공소와 지도공소에서 구세주의 희생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리는데 여념없는 교구 출신 선교사 신용생(스테파노)씨의 삶과 신앙을 따라가봤다.



일상 속 선교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 내 임자공소에서 만난 신 씨는 인상 좋은 촌부(村夫) 그 자체였다. 이곳에 파견된지 2년 남짓이지만 이미 시골 생활이 일상이 됐다.

“선교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 그저 지역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들어가 함께 살고 있을 뿐이에요.”

선교사 신 씨의 하루는 공소 식구들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그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그들만의 생활 속 희로애락에 함께하는 것, 그것이 선교사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살면서 말씀을 전하고 또 말씀을 삶으로 증거하는 것이 선교사로서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던 신 씨가 공소 식구인 김희숙(엘리사벳)씨와 함께 김 씨의 딸 박다원(라파엘라)양을 데리러 학교로 향했다. 신 씨를 보자마자 박 양의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아이고~, 얘가 선교사님이 무지하게 반갑나 보네, 이렇게 눈물까지 흘리는 걸 보니….”

어머니 김 씨가 박 양의 눈물을 닦으며 만면에 미소를 띠운다. 사실 박 양은 복합장애를 지닌 장애우다. 김 씨와 박 양 모녀는 신 씨를 통해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작년 12월 24일 세례성사를 받았다.

“어쩜 그렇게 귀에 쏙쏙 들어오게 교리를 가르쳐 주시는지, 감사할 따름이죠. 선교사님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요. 선교사님을 더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공소 가는 날이 기다려진다니까요.”

계속되는 칭찬에 신 씨는 얼굴을 붉히며 “허허”하고 웃을 뿐이다.

선교사의 하루

신 씨의 하루는 언제나 바쁘다. 틈날 때마다 임자도와 지도를 오가며 신자들을 방문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매주 수요일 저녁 7시30분 임자공소에서 신자 재교육을 위한 교리를 실시한다. 또한 매주 토요일엔 오후 7시부터 9시 사이 임자공소에서 교리와 공소예절 시간을 갖고,(임자공소에서는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4시 과달루페회 사제가 파견돼 미사를 봉헌한다.) 매주일엔 지도공소에서 예비신자 교리와 미사(오후 2시)에 함께 한다. 매주 교리수업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도 일과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신 씨는 이러한 바쁜 일상이 오히려 즐겁기만 하다.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어요. 제가 기쁘지 않은데 어떻게 남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겠어요.”

선교사가 되기까지

신 씨는 1996년 수원 지동본당에서 세례성사를 받았고, 광주대교구로 옮겨오기 전까지 13년 간 권선동본당에서 다양한 신앙활동에 참여했다. 사목회 활동은 물론 본당 레지오마리애, 꾸르실료, ME(메리지엔카운터) 등 활동범위도 상당하다.

하지만 적극적인 신앙생활에도 무언가 허전했다. 그러던 중 본당 원장 수녀로부터 고(故) 유광수 신부가 운영하는 말씀학교를 추천받아 다니게 됐고, 그 안에서 ‘신앙인의 삶’에 대해 더욱 깊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더 큰 고통이 찾아왔다. 갓 돌을 지낸 늦둥이 막내 아이에게 병마가 찾아온 것. 뇌종양이라고 했다. 병원을 옮겨가며 네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주신다는 것을 믿기에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다. 그 힘을 받아 아이도 결국 병마를 극복하고 건강해졌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던 신 씨에게 또 다른 신앙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바로 수원가톨릭대학교 하상신학원이다.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을 찾고, 예수님을 더욱 깊게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하상신학원을 알게 됐죠. 전 다른 이들처럼 선교사의 뜻을 품고 하상신학원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신앙 안에서 많은 것을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땐 이렇게 자신 앞에 펼쳐진 이 길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자신을 괴롭혀 오던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하상신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지금 삶을 향해 옮겨온 이곳에서 선교사로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하느님께서 저를 도구로 쓰시기 위해 선택해 부르셨고, 가르쳐주시고, 또 이곳에 파견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나누는 삶을 살아야죠. 소금처럼 세상에 자신을 녹여 내, 삶 안에서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실천하고 싶습니다.”

선교사 신 씨가 바라는 삶은 ‘세상의 소금이 되는 삶’이다. 소금은 모든 음식의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는 등 쓰임새는 많지만 자신을 녹여내야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가톨릭신문  2010-12-2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7. 3

예레 31장 3절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너에게 한결같이 자애를 베풀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