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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시기] 익숙함, 편리함과의 결별 (3) 자가용 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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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임선형
 


   "기자가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 버스나 지하철 타는 이들 이야기를 기사로 쓸 수 없다."

 16년 전 평화신문 기자로 입사했을 때 본당 신부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평생 검소하게 살아오신 신부님 말씀을 금언처럼 가슴에 새겨두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사순절에 `자가용 끊기`에 도전해 볼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환경보호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승용차 이용을 억제하고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생각은 생각에 그칠 뿐 곧 자가용의 편리함에 밀려나곤 했다.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말도 편리함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다.

 중독처럼 굳어진 자가용 타기를 끊는다는 것, 뭐가 그리 어려울까 쉽게 생각했지만 내 몸은 너무 오랫동안 자가용의 편리함에 습관화돼 있었다. 고질적 도심 교통체증과 주차난으로 인천 계양구에서 서울 명동까지 출퇴근은 부득이 지하철을 이용했으나 그 외에는 걷거나 버스를 타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심지어 매일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지하철역까지 나갈 때도 자가용을 이용했으니 말이다. 주말에 장을 보러갈 때도 마을버스로 충분히 갈 수 있는데 습관적으로 자가용을 몰고 가곤 했다. 그래서 차를 눈앞에 그냥 두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기로 한 사순절은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매일 아침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서 쌀쌀한 꽃샘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 도착한 만원버스에 올라타려고 아침부터 밀치고 당기고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겨우 매달리듯 버스에 오르더라도 많은 승객들과 부대끼며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나마 지하철역까지 몇 정류장 안 되는 것이 다행이다.

 지난 주일에 인천교구청에 취재하러 갈 때는 별 생각 없이 승용차에 올라 시동을 걸다가 깜짝 놀라 다시 내렸다. `아, 버스 타고 가야지.` 편안함을 뒤로하고 버스를 타고 간다. 승용차를 타고 갈 때보다 시간이 30분 정도 더 걸린다. 대신 운전을 하지 않으니 묵주를 꺼내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도 갖고 지난밤 잠자리에 들기 전 미처 다 읽지 못한 책도 읽을 수 있었다.

 버스 안에서는 예전 본당 신부님 말씀처럼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서민들 모습이 보였다. 승용차를 두고 온 덕분에 갓난아기를 안고 복잡한 버스를 탈 수밖에 없는 아기엄마, 장을 본 물건을 가득 실은 장바구니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오는 할머니, 휴일에도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메고 공부하러 가는 학생들 노고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역시 대중교통이 불편한 외곽지역으로 갈 때였다. 강화도로 건너가는 초지대교 약간 못 미쳐 김포 대곶면 대명리에 있는 글라렛 선교수녀원에 가는데, 승용차로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한 거리를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2시간 10여분 만에 도착한 것이다. 시간적 여유를 두고 출발하지 않았다면 약속시간에 늦을 뻔 했다.

 회사 취재차량을 이용할 수 있음에도 승용차 끊기를 철저히 실천하자는 생각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다소 무모한 시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다음날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에 위치한 성 빈첸시오의 집에는 연계버스가 없어 택시를 탈 수밖에 없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려면 세 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핑계로 승용차를 몰고 다녀왔다.

 사순 3주째, 예수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묵상하며, 아주 작은 일상의 불편함도 견디기 힘들어 할 만큼 편리함에 길들여진 내 삶의 문화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자가용 끊기는 편안함에 중독돼 있던 나에게 절제의 정신, 가난한 이웃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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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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