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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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시기] 은총의 사순시기 : <3> 기다림

다시 봉사현장을 누빌 그 날을 기다리며 - 뇌졸중 재활치료하는 안성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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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여전히 제가 필요하다고 하시면 `예`하고 달려가야지요."
안성수씨가 다시 힘차게 봉사현장을 누빌 그 날을 기다리며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
 

 
▲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고마워요."
홍은3동본당 나눔의 묵상회 안성수씨(사진 오른쪽)가 2009년 7월 관내 어려운 이웃을 찾아 이야기를 듣는 모습.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한 병원 재활치료실.

 안성수(베르나르도, 77, 홍은3동본당)씨가 뇌졸중으로 마비된 왼쪽 팔과 다리 재활훈련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재활치료사가 팔을 꺾고 움직일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오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며 평온한 표정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본당 교육분과 위원, 사목회 총회장, 기도모임 회장, 구역장, 본당 나눔의 묵상회 회장까지…. 그는 본당에서 주어지는 일은 주님의 일이라고 여기고 40여 년간 쉬지 않고 봉사했다.

 하지만 팔순이 가까운 나이에 무리해서일까. 지난해 12월, 여느 때처럼 어려운 가정을 돌며 밑반찬을 나눠주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뇌졸중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도움만 줘봤지, 자신에게 그런 증세가 있다는 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게다가 부인마저 손자를 보러 딸에게 간탓에 집에 홀로 남은 상황. 우연히 새벽에 걸려 온 지인의 전화 덕에 응급실에 실려갈 수 있었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요한 4,7)
 그는 법원 공무원으로 40여 년을 일했다. 집과 직장, 성당만을 오가는 삶이었다. `공무원 연금제도` 기초를 마련하는 일에 참여했던 그는 "청렴결백하게 일해서 내가 만든 퇴직연금을 받겠다"는 다짐으로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다.

 공직자에게 흔히 다가오는 유혹도 단호히 뿌리쳤다. 법원 안팎에서 "저 사람은 한눈 팔지 않고 일만 하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1992년 사법부 예산담당관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본당에서 `사목회 총회장`이라는 중책이 떨어진 것도 그 무렵이다. 그는 처음에 "직장 일이 바빠 곤란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래도 하느님은 봉사할 시간을 주신다"는 주임신부 말에 발목이 잡혔다. 일, 가정, 신앙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었기에 결국은 과로로 몇 주간 병원 신세까지 졌다. 그래도 주어지는 `주님의 일`은 중단할 수 없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후 맞은 정년퇴직. 그는 법무사 자격증이 있어 사회생활을 지속하거나 노후를 편안히 즐길 법도 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이번 기회에 제대로 봉사를 하자`라는 생각이었다. 하늘의 별 따기만큼 취득하기 어렵다는 `법무사 자격증`은 장롱에 고이 모셔두고 봉사현장으로 나갔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
 퇴직 후 그는 나눔실천 단체인 `나눔의 묵상회` 회원이 됐다. 오랜 세월 교회에서 봉사했지만 세상에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너무 많다는 걸 새삼 깨달고 그 단체에 자원했다. 그러기에 드러나지 않는 어려운 이들을 찾아 더 많이 돌아다녔다.

 뇌졸중으로 입원한 지 석 달째. 이제 본당 나눔의 묵상회 회장 직책에서 물러났지만 몸이 불편한 안 회장, 아니 안성수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법원에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노인부터 "배가 고픈데 갈 곳이 없어 찾아왔다"는 사람, "아이가 아픈데 수술비를 마련할 길이 없다"며 하소연하는 가장까지 누구 하나 뿌리칠 수 없는 딱한 사람들이다.

 그는 "얼마나 도움을 청할 곳이 없으면 몸도 성치 않은 나를 찾아오겠느냐"며 불편한 몸으로 법원 제출서류를 힘겹게 작성한다. 주위 사람들이 그를 위로하려 "하느님께서 휴가를 주셨으니 이참에 푹 쉬라"고 말하지만 쉴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는 도움을 받은 이들에게 감사인사를 받지 않는다. 그저 "개인적으로 도운 게 아니니 하느님한테 감사하라"는 말만 반복한다. 주님의 일을 했다는 자체가 은총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그를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그는 재활치료가 끝나는 부활절 무렵 퇴원할 계획이다. 불편한 왼쪽 손과 발도 반드시 나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병원에서 나가면 예전처럼 몸으로 하는 봉사보다 `마음으로 하는 봉사`에 중점을 둘 생각이다.

 "홀몸 어르신들은 얘기를 들어주고 병원에 같이 가주는 것만으로도 병세가 좋아집니다. 그러면 부모에게 소홀했던 자식들이 나타나 미안하다는 말을 해요. 이게 바로 하느님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는 "정말 뜻깊은 사순시기를 보낼 기회를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셨다"며 "다시 한 번 허락하신다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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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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