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사순시기] 익숙함, 편리함과 결별 (5)

절반의 성공…삶과 신앙에 큰 자극이었던 것 분명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겁 없이 일을 벌였다. 그것도 네 가지나. 텔레비전ㆍ인터넷ㆍ휴대전화 끊기, 커피ㆍ청량음료ㆍ인스턴트식품과 결별,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 이용하기, 외식ㆍ쇼핑과 결별하기.

 결론적으로 절반만 성공했다. 커피ㆍ청량음료ㆍ인스턴트식품은 확실하게 끊었는데 텔레비전ㆍ인터넷ㆍ휴대전화는 끊기가 쉽지 않았다.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다닐 때는 자가용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혼자 다닐 때는 항상 지하철과 버스를 탔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첫 번째 도전 목표로 삼은 건 제일 끊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쉬는 날이면 텔레비전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게 일상이었기에 그것과의 이별이 쉽지 않을 거라고 짐작은 했다.

 텔레비전 끊기에는 여러 가지 시련이 따랐다. 지금까지 나와 비슷한 습관으로 살아온 가족들이 `복병`이었다. 쉬는 날 텔레비전을 끄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했으나 가족들은 내 결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 종일, 심지어 식사시간에도 텔레비전을 끄지 않았다. 만화영화에 푹빠진 아이들은 휴일 오전에는 거의 텔레비전을 껴안고 살았다. 거실에 앉아 있으면 어머니 방에서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집에 있으면 텔레비전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결국 내 스스로 운동이나 산책을 하러 나가는 일도 더러 있었다.

 또 기사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찾으려고 인터넷에 접속하면 무의식적으로 다른 쪽으로 눈길이 가서 마우스를 클릭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 시작화면을 빈 페이지로 설정해 놓았고, 집에서는 컴퓨터를 켜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솔직히 텔레비전과 인터넷 끊기는 잘 지켰다고 말하기 어렵다. 몇 번은 드라마 결말이 궁금해 나도 모르게 텔레비전을 켠 적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만일 사순체험이라는 계기가 없었다면 이만큼의 텔레비전과 인터넷 `다이어트`도 어려웠을 것이다. 평소에도 줄여보자는 결심을 여러 번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타협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순절 첫 주에 만났던 한 수녀님은 `아직도 커피를 마시지 않냐?`고 묻는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금기가 욕망을 더 부채질한다고, 옆 자리에서 은은한 커피향이 풍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진한 카푸치노 한 잔의 유혹에 빠져든다. 특히 식사 때 기름진 음식을 먹은 경우 입안의 느끼함을 잡아줄 것만 같은 커피믹스 한 잔이 간절해진다. 그래서 누군가 `커피의 본능은 유혹,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다`고 했던가.

 대형마트와 인터넷 쇼핑을 끊고 난 후 소비가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일단 눈에 보이지 않으니 충동구매가 없어졌다. 덕분에 3월 한 달 동안 지출이 평소보다 30만 원이나 줄었다.

 자동차와 결별은 대중교통이 불편한 외곽지역으로 취재를 갈 때를 제외하곤 딱히 불편할 일도 없었다. 지난 주말에 유치원생 딸을 성당에 데려다 줄 때도 차를 두고 걸어갔는데 평소 그렇게 많이 걸을 일이 없던 딸은 다리가 아프다고 몇 번이나 주저앉았다. 유치원이나 성당에 갈 때도 항상 차를 타고 다녔으니 걷기운동이 부족한 탓이다. 내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가능한 자가용을 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동안 익숙함, 편리함과 결별해 본 의미는 컸다. 우선 주위에서 관심이 쏟아졌다. 주변 사람들 격려부터 아내의 칭찬(?)까지. 거창하지는 않지만 삶과 신앙에 새로운 자극이 됐던 것만은 분명하다.

 끊기와 결별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한다. 술ㆍ담배 끊기가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그렇다. 그러나 낡은 습관을 끊어버리는 고통 없이 무엇을 회복하거나 새롭게 시작하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나의 익숙함, 편리함과의 결별은 지금도 계속된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1-04-1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7. 3

욥 14장 7절
나무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잘린다 해도 움이 트고 싹이 그치지 않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